[보험] "유증으로 연금보험 계약자 지위 일방적 이전 불가"
[보험] "유증으로 연금보험 계약자 지위 일방적 이전 불가"
  • 기사출고 2018.08.24 16: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법] "약관 따라 보험사 승낙 있어야"

연금보험 약관에서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변경하려면 보험사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면 보험사의 승낙 없이 유증으로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7월 12일 숨진 이 모씨로부터 연금보험금을 유증받은 이씨의 두 딸인 A씨와 B씨가 "연금보험의 계약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라"며 AIA인터내셔널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다235647)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에선 원고들이 승소했으나,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피고 측 주장이 받아들여져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으며, 이씨의 또 다른 자녀 2명이 항소심부터 피고보조참가했다.

이씨는 2012년 11월 AIA인터내셔널과 연금보험계약 2개를 체결하면서 제1 연금보험료 6억 9460만원과 제2 연금보험료 4억 9660만원을 전액 일시불로 납부했다. 제1 연금보험은 피보험자인 A씨가 만 50세까지 생존하면 보험계약자이자 보험수익자인 이씨에게 연금보험금으로서 매월 약 20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만약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법정상속인에게 7000만원과 사망 당시 연금계약 책임준비금을 합산한 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었다. 제2 연금보험도 피보험자인 B씨가 만 49세까지 생존하면 이씨에게 매월 약 15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만약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법정상속인에게 5000만원과 사망 당시 연금계약 책임준비금을 합산한 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었다. 한편 이 상품 약관에는 계약자는 보험사의 승낙을 얻어 계약자를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씨가 2014년 2월 사망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씨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인 2013년 9월 작성된 유언공정증서에는 이씨가 제1 연금보험금 즉, 매달 받던 200만원 전후 금액을 피보험자인 A씨에게, 제2 연금보험금 즉, 150만원 전후 금액을 B씨에게 유증한다고 기재되어 있었고, 보험증권 사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씨는 또 A씨를 유언집행자로 지정했다. 원고들은 그러나 이씨의 사망 이후 AIA 측에 연금보험의 계약자를 자신들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AIA는 유언공정증서에 따른 유증의 대상은 각 연금보험 또는 그 계약상 지위가 아니라 각 연금보험에 따른 '연금보험금'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2014년 3월경부터 연금보험금으로서 이씨에게 지급하던 일정액의 연금 즉, A씨에게는 약 200만원, B씨에게는 약 150만원을 매월 지급, 원고들이 소송을 냈다. 이씨에게는 상속인으로 원고들 외에도 배우자와 자녀 4명이 더 있다.

대법원은 먼저 "생명보험은 피보험자의 사망, 생존 또는 사망과 생존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으로(상법 730조), 오랜 기간 지속되는 생명보험계약에서는 보험계약자의 사정에 따라 계약 내용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생명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변경하는 데 보험자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의 승낙이 없는데도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보험계약상의 지위를 이전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계약자의 지위 변경은 피보험자, 보험수익자 사이의 이해관계나 보험사고 위험의 재평가, 보험계약의 유지 여부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러한 이유로 생명보험의 보험계약자 지위 변경에 보험자의 승낙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유증은 유언으로 수증자에게 일정한 재산을 무상으로 주기로 하는 단독행위로서 유증에 따라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하는 데에도 보험자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하고,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료를 전액 지급하여 보험료 지급이 문제되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유언집행자는 유증의 목적인 재산의 관리 기타 유언의 집행에 필요한 행위를 할 권리 · 의무가 있다. 유언집행자가 유증의 내용에 따라 보험자의 승낙을 받아서 보험계약상의 지위를 이전할 의무가 있는 경우에도 보험자가 승낙하기 전까지는 보험계약자의 지위가 변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피고의 승낙 없이 자신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는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이전할 수 없기 때문에, 이씨는 보험계약자의 지위를 원고들에게 유증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연금보험금에 관한 권리를 유증하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 유언공정증서의 문언에 부합하고 합리적이고, 유언공정증서에 유증의 대상을 '무배당 AIA 즉시 연금보험금'이라고 기재하였는데, '연금보험금'과 '보험계약자의 지위' 자체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어서 연금보험금을 연금보험계약의 계약자 지위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에 반할 수 있으며, 이 사건 분쟁의 실질은 원고들과 다른 공동상속인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보이는데, 유언공정증서의 '연금보험금'이라는 문언을 보험계약자의 지위 자체로 새기는 것은 더욱 신중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상고심에서 법무법인 평원이 원고들을, AIA는 법무법인 양헌이, 피고보조참가한 이씨의 또 다른 자녀는 법무법인 서울센트럴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