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무기계약 근로자도 '사회적 신분'
[노동] 무기계약 근로자도 '사회적 신분'
  • 기사출고 2018.07.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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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같은 일 하는 기능직 공무원과 차별하는 단체협약 무효"

진 모씨 등 76명은 1988년부터 2005년 사이에 경찰청과 소속 기관에서 고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이후 일용직을 거쳐 현재는 무기계약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다. 국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등급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보수표준안을 제정, 진씨 등과 같은 무기계약 근로자들에게 보수를 지급하였으나, 보수표준안은 등급을 산정함에 있어서 일용직 근로자 근무경력만을 반영하고,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무기계약 근로자들의 노동조합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호봉제를 원칙으로 한 보수표준안을 결정하였으나, 이 보수표준안도 호봉 산정에 있어서 일용직 근로자 근무경력만을 반영하고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무기계약 근로자인 진씨 등은 고용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보수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반면 과거 고용직 공무원을 거쳐 기능직 공무원이 된 자들은 고용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100% 보수에 반영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박종택 부장판사)는 6월 14일 진씨 등 76명이 "고용직 공무원의 경력을 호봉으로 반영하지 않은 단체협약은 무효"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2017가합507736)에서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시, "국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용직 공무원에서 자진퇴직한 7명을 제외한 69명에게 차별 받은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진씨 등은 "단체협약은 무기계약 근로자라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으로 무효"라며, 호봉제가 시행된 2013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고용직 공무원으로서의 근무경력이 반영된 보수액과 기존에 지급된 보수액과의 차액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근로기준법 6조는 '균등한 처우'라는 제목 아래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서 '무기계약직'이라는 근로계약상의 지위 또는 고용의 형태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지 10여년이 경과하였고, 우리 사회에서 일정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 일정 기간 이를 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단기간 내에 이를 변경하는 것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는 직업 또는 근로와 결부되었다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취득하는 경우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또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하여 더 낮은 대우나 보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하여 자격이나 능력이 열등하다는 평가가 해당 직장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무기계약 근로자'라는 지위는 근로기준법 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03년 12월 직제개편으로 고용직 공무원의 정원이 감축되었고, 원고들은 직제개편에 따라 국가가 자진퇴직을 권고하자 퇴직원을 제출하고, 국가의 취업알선계획에 따라 국가와 일용직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국가가 2006년 8월경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함에 따라, 경찰청과 소속기관 산하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그 무렵부터 2008년 1월까지 사이에 근로계약상의 지위가 일용직에서 무기계약 근로자로 변경되었다. 반면 국가의 고용직 공무원 직제개편과 자진퇴직 권고에 응하지 아니하고 고용직 공무원의 지위를 유지하였던 89명의 고용직 공무원 중 77명은 공무원임용령에 따라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기능직 공무원으로 특별채용 되었다.

재판부는 "기능직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된 사람들은 과거 원고들과 동일하게 고용직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원고들과 동일 또는 동종의 업무를 담당하였고, 현재에도 원고들과 동일 · 동종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원고들과 기능직 공무원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함에도, 피고는 기능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을 100% 호봉에 반영하는 것에 반하여 원고들의 경우에는 고용직 공무원의 근무경력을 호봉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 등으로 원고들을 달리 처우하고 있고, 이와 같이 달리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들에게 적용되는 단체협약 중 고용직 공무원의 근무경력 호봉산정에 반영하지 않는 부분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6조 균등처우규정을 위반하여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단체협약 중 고용직 공무원 경력을 호봉 산정에 반영하지 않아 무효로 된 부분은, 원고들이 근로기준법 6조에 반하는 차별적 처우가 없었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받았을 임금 액수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와 같이 성립된  근로계약에 따라 원고들은 피고에게 차별받은 임금 상당액을 직접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현이 진씨 등을, 국가는 정부법무공단이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