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퇴사 7년 후 뇌종양 진단 받고 사망한 삼성 반도체 직원…업무상 재해"
[노동] "퇴사 7년 후 뇌종양 진단 받고 사망한 삼성 반도체 직원…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17.11.1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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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발암물질에 지속적 노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지 약 7년 후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 사망한 직원의 가족이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백혈병과 다발성 경화증에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의 뇌종양에 대해서도 산재 판정을 내린 의미 있는 판결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직원이었던 고(故) 이윤정(여 · 사망 당시 32세)씨의 배우자인 정 모씨가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6두1066)에서 정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온양사업장 반도체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일하다가 2003년 퇴사한 이씨는 약 7년이 지난 2010년 5월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자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뇌종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되자 소송을 냈다. 이씨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2년 5월 사망했다. 이씨는 온양사업장 재직시 생산 완료된 반도체칩이 실린 운반기구를 직전 공정에서 끌어와, 반도체칩을 100여 개의 소켓으로 구성된 판에 꽂아 넣고, 다시 그 판을 정렬장치에 꽂은 다음, 그 정렬장치를 고온테스트기계에 넣고 일정 시간 동안 약 120°C로 가열한 상태로 전류를 흘려보내 반도체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고온테스트 과정에서 일부 반도체칩은 합선이 발생하여 판에 있는 소켓에 눌어붙거나 타버리는 일이 일어나는데, 반도체칩 자체의 불량 외에도 반도체칩이 소켓에 잘못 꽂힌 경우에도 합선이 발생하였고, 고온테스트를 마친 후 기계를 열면 고무가 탄 듯한 냄새가 났다. 합선이 발생한 소켓에는 고열에 의해 산화된 이물질인 '검댕'이 끼어 있었으며, 근로자들이 종종 '에어건(air gun)'을 사용하여 제거했다. 이씨의 가족 중 유전 질환이나 암으로 투병한 환자는 없었다.

대법원은 이씨의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약 6년 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지적하고, "비록 이 사업장에서 측정된 발암물질의 측정수치가 노출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근로자가 장기간 노출될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 ·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이씨는 주로 4조 3교대 또는 3조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증가하는 경우 1일 12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하여 신체의 밤낮 주기가 매우 불규칙하였으므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반도체사업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2년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과 유해요인을 연구하였고, 2014년경에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뇌종양을 진단받은 다른 근로자와 관련한 역학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온양사업장에서 노출기준 이하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비전리방사선이 측정되었고, 고온테스트 후 설비 내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형 먼지에서 납이 검출되었으며, 고온테스트 과정에서 합선이 발생하는 경우 납 성분이 포함된 연기가 발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대법원은 "이씨가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사업장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후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하였다"며 "이 사업장과 이와 근무환경이 유사한 반도체사업장에서의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이씨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발병률과 비교하여 유달리 높다면, 이러한 사정 역시 이씨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교모세포종은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종양이 빠른 속도로 성장 ·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뇌종양 발병에까지 이르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씨가 퇴직 후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씨의 업무와 뇌종양의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지난 8월 29일 선고된 대법원 2015두3867 판결을 인용하며,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이른바 '희귀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고,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발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발병률보다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희귀질환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 판정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법무법인 여는이 이씨를 변호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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