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회고록(김인섭 변호사)②벽제테니스클럽
법조회고록(김인섭 변호사)②벽제테니스클럽
  • 기사출고 2012.07.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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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표, 주한 미국대사…테니스 치는 유명인사치고 안 다녀간 사람 없어판사들 여가선용 위해 대자동에 만들어김영준, 심훈종, 고영구, 김인중 등 참여
변호사가 된 이후의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법원에 근무할 때 추진한 일로 소개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법원에 테니스 코트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당시 경제기획원을 찾아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에게 승용차를 제공하도록 관철시킨 일도 있다. 또 일반 민사 · 상사 재판 이외에 지적재산권 · 해상 · 노동 등 특별법 분야의 이론과 재판실무를 연구하는 특별실무연구회를 법원 내에 만들어 판사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여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김인섭 변호사가 벽제테니스클럽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법원에 테니스 코트를 만든 데 이어 벽제테니스클럽을 만들어 발전시킨 테니스와의 인연을 특히 빼놓을 수 없다.

탁구, 수영, 기계체조 등 즐겨

나는 요즈음에도 자주 즐기는 골프는 물론 테니스, 탁구, 수영, 기계체조 등 운동을 좋아했고, 제법 잘 했다. 운동신경이 조금 있나 보다. 특히 테니스를 좋아했는데 한창때는 선수 수준으로 잘 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재판 업무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었던 셈이다. 나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들에게도 여가선용의 방편으로 골프 등 운동을 많이 권한다. 태평양이 골프 회원권을 많이 확보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골프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 미국 등에 출장을 가면 농담삼아 골프얘기를 꺼내는 외국 로펌의 변호사들이 있는데, 골프를 치는 핵심은 여가선용이요 마음의 수양이다.

다시 테니스 얘기를 해보자. 내가 서울지법에 근무하던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서소문에 위치한 법원 내에 테니스 코트가 없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판사 몇몇이 인근의 이화여고, 배화여고 코트를 빌려 테니스를 치곤 했다. 나중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희경씨가 당시 이화여고 교장이었는데, 그녀가 "법원에서 판사들한테 테니스 코트 하나 안 만들어주고 너무 하지 않느냐"고 놀랍다는 듯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법원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법원행정처 간부 등을 찾아다니며 테니스 코트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판사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법원 내에서 건전한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즐기는 게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궁극적으로 당시 민복기 대법원장을 만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응암동의 서대문 등기소에 법원 테니스 코트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서대문 등기소에 첫 코트

이후 새로 짓는 법원 청사엔 미리 테니스 코트 부지를 확보해 판사들이 전국 어디에 근무하든 테니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그 기초를 닦은 셈이다.

법원에 테니스 붐이 일며 대법원장배 전국법원테니스대회가 열려 1회 대회에서 내가 주장으로 참가한 서울지법이 우승했다. 국무총리배 삼부요인 대항 테니스대회도 내가 주선했는데, 법원이 첫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법원 대표선수 중 한 명으로 출전, 금성사 TV를 부상으로 받아 집에 가져갔더니 집에서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법원에 테니스 코트가 들어섰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코트가 생기자 테니스를 치려는 판사들이 늘면서 잘 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치라는 등 코트 이용을 둘러싼 경쟁이 간단치 않았다.

나는 뜻 있는 동료들을 모아 전용 코트를 만들기로 했다. 일종의 테니스 프라이빗 클럽(private club)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벽제테니스클럽. 산 등성이어에 위치해 조용하고 아득하다.
이때부터 땅을 보러 다닌 게 6개월. 당시 돈 있는 사람들이 서울 강남의 말죽거리에 부동산 투기하러 다닐 때인데, 나는 거꾸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경기도 고양시의 대자동에 제법 그럴듯한 후보지를 찾았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공격하려고 인근 지역으로 침투한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지난 시기라 이 지역의 땅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팔 사람만 많았다.

15명이 1인당 20만원씩 갹출해 야산이 낀 1만평의 부지를 평당 300원씩 300만원을 주고 샀다. 벽제테니스클럽의 부지가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야산을 갈아엎어 테니스 코트를 조성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72년 준공

나는 나의 고려대 후배로 그가 구속되었을 때 신원보증을 서 준 적이 있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상무에게 토목공사를 부탁했다. 그가 흔쾌히 불도저를 보내 줘 토목공사를 마치고 1972년 두 면의 아담한 코트를 마련한 벽제테니스클럽이 문을 열 수 있었다. 또 주변에 채소도 심고, 가족들과 함께 고기도 구어 먹을 수 있도록 부대시설을 마련해 일종의 주말농장처럼 운영했다. 불광동에 살았던 나는 물론이고, 여러 회원이 테니스를 치기 위해 앞다퉈 코트를 찾았다. 주말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주말 나들이 코스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강신옥, 이종욱 종 참여

노태우 대통령 시절 감사원장을 지낸 김영준 당시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지금은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심훈종 판사, 고영구 전 국가정보원장, 지금은 대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중 판사 등이 처음부터 참여한 창립멤버들이다. 또 15명의 창립회원 중엔 불도저를 보내 토목공사를 도와 준 이명박 대통령 등 기업인들도 여럿 있었다. 강신옥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종욱 변호사, 박준서 전 대법관, 이원조 전 의원,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도 벽제테니스클럽 회원들이다.

회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벽제테니스클럽의 이름이 알려지며 여러 사람이 테니스 한 번 치자고 야단이었다. 서울시내에 테니스 코트가 여럿 있었지만, 남의 눈에 띄는 게 싫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교외에 위치한 벽제테니스클럽이 각광을 받은 것이다.

외부인사들에 적극 개방

어차피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용코트로 만든 것 아닌가. 또 주로 판사들인 회원들은 주말에나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주중시간을 외부인사들에게 적극 개방했다.

10.26 사건 이후 청와대를 떠나 운동하는 게 마땅치 않았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도 벽제테니스클럽에 와서 테니스를 친 적이 있고, 윤필용 전 수경사령관, 민관식 전 문교부장관, 주한 미국 대사, 미 8군의 장성 등 테니스를 좋아하는 유명 인사 중에 벽제테니스클럽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금성사 사장으로 있던 박승찬씨도 그 중 한 사람인데, 박 사장은 특히 발이 넓어 박 사장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벽제에 와서 운동을 하고 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대 최고의 전문경영인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박 사장이다.

전, 노 대통령 가입 반대

벽제테니스클럽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연이 하나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현역 군인시절 회원으로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다른 회원을 통해 들어 왔다. 회장이자 클럽 창립을 주도한 나는 "정치군인들은 골치 아프다"며 반대했다. 나중에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이 되었다. 이를 보고 어떤 회원들은 "김인섭 변호사도 세상을 잘못 읽을 때가 있구나"라고 하고, 또 다른 회원들은 "역시 김인섭 변호사"라고 했는데, 내가 정치를 멀리하고, 정치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것만큼은 확실하다. 정치에 대해 특별히 반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그랬다.

클럽을 만든 지 40년이 지난 올 봄 오랜만에 벽제테니스클럽을 찾았다. 주변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처음 만들 때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등성이 위에서 내려다 보는 남동향의 탁트인 조망은 예나 지금이나 테니스 코트의 명당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정리=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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