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자동차부품 공급 중단' 압박에 소송 금지 합의한 현대차 1차 협력업체…취소 가능
[민사] '자동차부품 공급 중단' 압박에 소송 금지 합의한 현대차 1차 협력업체…취소 가능
  • 기사출고 2023.12.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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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해당"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가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2차 협력업체의 압박에 못 이겨 합의금을 주고 소송 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약정했다. 대법원은 위법한 해악의 고지로 말미암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 차체, 프레임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인 A사는, 2차 협력업체인 B사와 금형과 검사구 등을 대여하고 자동차 부품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A사와 B사 사이에 2018년 9월 무렵부터 부품의 단가조정, 납품지연, 품질관리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 A사는 2018년 11월 B사에 부품 공급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하면서 위 계약에 따라 금형 등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B사의 대표이사인 C는 A사에 대해 정산금 등의 지급을 요구하면서 금형 등의 반환을 거부하고 부품 공급을 지연하거나 중단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2018년 12월 A사가 B사를 상대로 금형 등에 대한 동산인도단행가처분을 신청하자 C는 A사의 구매본부장에게 가처분신청을 취하하지 않으면 부품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실제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A사의 일부 생산라인이 일정 시간 중단되기에 이르자 A사는 C의 요구에 따라 어떠한 경우에도 금형 등과 관련하여 가처분 등 법률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고 위 가처분신청을 취하했다.

C는 2019년 1월 25일 A사에게 정산금과 투자비용 및 손실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22억원에서 27억원(부가가치세 제외)의 지급을 요구하며 재차 부품의 공급을 지연했다. C는 정산금 세부내역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이에 A사는 6일 후인 1월 31일 C와 B사에 투자금과 손실비용 등으로 24억 2,000만원(부가가치세 포함)을 지급하고 B사로부터 금형 등을 반환받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A사가 본건 합의 이후 어떠한 경우라도 본 합의의 내용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며 B사와 B사의 임직원을 상대로 민 · 형사 소송이나 이의(각종 가처분, 반환청구 등 포함)를 제기할 수 없다. 위반시 위 합의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B사에게 배상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 합의서에 첨부하여 작성된 각서에는 A사가 B사와 그 임직원을 상대로 소송 등(각종 가처분 포함) 민 · 형사적 이의를 제기하거나 합의에 관련한 내용 및 합의과정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는 경우, 사소한 험담을 포함하여 B사의 영업활동에 저해가 될 수 있는 언행이나 방해 행위 등를 하는 경우에는 항목별로 50억원씩 배상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A사는 그러나 이후 "이 합의는 B사의 대표이사가 A사의 대표이사 등을 협박하여 체결된 것이므로, 민법 110조에 의해 합의를 취소한다"며 B사를 상대로 26억 4,500여만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C가 원고의 대표이사 등에게 불법으로 어떤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원고의 대표이사가 공포를 느끼고 C와 사이에 합의를 하였다거나 합의 과정에서 법질서에 위배될 정도의 강박 수단이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부제소합의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그러나 11월 30일 이 소송의 상고심(2022다294831)에서 "A사와 B사의 2019. 1. 31 합의(이 사건 합의)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 원심판결을 파기하되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민법 제110조 제1항에 따라 취소할 수 있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상대방이 불법으로 어떤 해악을 고지함으로 말미암아 공포를 느끼고 의사표시를 한 것이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어떤 해악을 고지하는 강박행위가 위법하기 위해서는 강박행위 당시의 거래관념과 제반 사정에 비추어 해악의 고지로써 추구하는 이익이 정당하지 아니하거나 강박의 수단으로 상대방에게 고지하는 해악의 내용이 법질서에 위배된 경우 또는 어떤 해악의 고지가 거래관념상 그 해악의 고지로써 추구하는 이익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부적당한 경우 등에 해당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4049 판결,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다72643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이어 "C가 원고에 대하여 부품 생산에 필요한 이 사건 금형 등을 반환하지 아니한 채 부품 공급을 지연하거나 중단하였고, 그로 인하여 원고가 정산금 세부내역에 대해 검토하지 못한 채 이 사건 합의를 통하여 B사에 C로부터 요구받은 합의금을 지급하고 가처분이나 민 · 형사소송 등 정당한 권리행사를 포기하며 원고의 권리행사에 대하여 막대한 손해배상액까지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은 위법한 해악의 고지로 말미암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따라서 이 사건 합의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단정한 원심과 제1심의 판단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천지인이 A사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