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명예훼손 안 돼
[손배]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명예훼손 안 돼
  • 기사출고 2023.12.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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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실 적시 아닌 의견 표명 · 의혹 제기 불과"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조각가 A씨 부부가 해당 노동자상의 모델이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고 주장한 전 대전시의원 B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의 상고심(2022다280283)에서 "이 주장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 또는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판시, B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피고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같은 재판부는 또 A씨 부부가 B씨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한 시민운동가 C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23다220790)에서 A씨 부부의 상고를 기각,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 부부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의뢰를 받고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해 2016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일본 교토, 서울, 대전 등지에 순차로 설치했다.

B씨는 그러나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관련해 2019년 8월 12일부터 14일 사이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하거나 보도자료를 배포, 위 노동자상은 조선인이 아니라 1920년대 일본 경찰의 수사로 구출된 일본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모델로 만들었으므로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는 역사왜곡 행위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발언들을 했다. C씨도 페이스북과 유튜브, 집회에서 "노동자상 모델은 1925년 홋카이도에서 강제 사역되다 경찰에 의해 풀려난 일본인이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그러나 그 모델은 1926년 일본인",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역사왜곡이다"라는 등의 내용의 글을 게시하거나 발언을 했다. 

대법원은 먼저 "순수하게 의견만을 표명하는 경우 표현행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등 별개 유형의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그 의견 표명 자체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여기서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또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원고가 청구원인으로 그 적시된 사실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구하는 때에는 그 허위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피고가 적시된 사실에 대하여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없다고 항변할 경우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은 이를 피고가 부담한다(대법원 2008. 1. 24. 선고 2005다58823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B)의 이 사건 발언들은 그 전체적인 맥락 등을 고려하면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일본 내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구출된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거나 양자 간에 상호 유사성이 있다는 피고의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고, 특히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하였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제작자인 원고들의 내심의 의사에 기반한 창작 결과물만을 보는 제3자로서는 이를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진위를 증거에 의하여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발언들은 통상적인 어휘의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의미를 확정할 경우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의 제기에 불과하여 명예훼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많고, 이를 허위라고 볼 만한 원고들의 증명 또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떠한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여 그에 따른 비평의 대상이 된다"며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 · 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등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섣불리 이를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나아가 피고가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대한 의혹의 제기나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를 인정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발언들은 공적 공간에 설치되어 그 철거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된 공론을 이끌어낸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데 위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초 · 중 · 고교 교과서나 부산 소재 국립역사관 내 설치물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바 있었던 점, 그러다가 이 사건 노동자상의 설치 전부터 언론보도를 통해 위 사진 속 인물들이 사실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 점, 그 후로 해당 교과서나 역사관 내 사진이 순차 교체되거나 삭제되기에 이른 점 등에 비추어, 설혹 이 사건 발언들이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로서는 위 발언들을 행할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특히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 · 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