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중국 · 인도산 프랜지를 국산으로 속여 1,200억어치 판매…한국프랜지 회장 등 무더기 징역형
[형사] 중국 · 인도산 프랜지를 국산으로 속여 1,200억어치 판매…한국프랜지 회장 등 무더기 징역형
  • 기사출고 2020.07.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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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그라인더로 제거한 후 'KOREA' 새로 각인"

울산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는 6월 26일 중국 또는 인도산 프랜지를 자신들이 생산한 국산 제품인 것처럼 속여 1,200여억원어치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프랜지공업 회장 김 모(74)씨에게 징역 7년, 전 · 현직 대표이사와 임원, 위장계열사 대표 등 6명에게 징역 5년∼2년 6월을 각각 선고하고 이들을 모두 법정구속했다(2019고합186). 양벌 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한국프랜지공업엔 벌금 2억원이 선고되었다(2019고합186). 법무법인 화우와 신민수 변호사가 한국프랜지공업을 변호했다. 프랜지(flange)는 파이프를 고정해 주는 부품으로서, 고온 · 고압 · 초저온의 기체(LPG, LNG, 각종 가스)나 액체(기름, 화학약품, 물)가 흐르는 곳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단 한 개의 결함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김 회장 등은 한국프랜지공업(한국프랜지)의 프랜지 제조원가가 타 업체에 비하여 높아 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되자 2008년 7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0년간 중국 또는 인도산 프랜지 1,425,179개를 한국프랜지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인 것처럼 속여 현대건설, 삼성물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25개 피해회사들에 판매하여 1,200여억원을 편취한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기소됐다. 이들은 원산지를 조작한 플랜지 6,969개, 11억여원어치를 러시아 등 해외 여러 나라에 마치 우리나라 제품인 것처럼 속여 수출하고(대외무역법 위반), 국내산인 것처럼 세관장에게 허위신고를 한 혐의(관세법 위반) 등으로도 기소됐다.

김 회장 등은 중국, 인도에서 수입한 저가의 프랜지에 'MADE IN CHINA' 표시를 그라인더 작업으로 제거한 후 한국프랜지의 제품번호와 회사로고 및 'KOREA'를 새로 각인하는 수법으로 원산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한국프랜지에서 직접 중국산 프랜지를 수입하거나 구매할 경우 소문이 금방 퍼질 것을 예상하고, 관세청 등 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프랜지 수입을 전담하는 위장 계열사까지 설립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한국프랜지의 오너, 대표이사, 임원, 실무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서로 공모하여 중국과 인도로부터 저가의 프랜지를 수입한 다음, 원산지 표시를 삭제하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물품인 것처럼 표시한 후 국내외 건설사, 조선사, 대리점 등에 이를 속여 판매하고, 그 과정에서 대외무역법과 관세법 등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오로지 회사의 이윤과 오너 일가의 이익만을 위해 자기 회사가 오랜 기간 쌓아온 공신력은 물론이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비롯한 거래 회사들이 입을 지도 모르는 신뢰도 하락과 천문학적인 손해, 이들 기업에게 플랜트 공사 등을 의뢰한 국내외 최종 발주 회사나 국가의 막대한 손해와 국민의 안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범행으로서, 기업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임과 동시에 도덕적 해이의 극치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이 2008. 7.경부터 2018. 9.경까지 10년간 이어졌고, 원산지 조작사실을 모른 채 프랜지를 직접 제공받은 피해회사가 25개에 달하며, 편취금액이 무려 1,200여억 원에 이르고, 이들에게 각종 시설 및 플랜트 공사를 의뢰한 최종 발주 회사를 포함할 경우 원산지 조작 프랜지가 최종적으로 사용된 피해회사는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막대한 수량의 수입 프랜지 원산지 표기를 일일이 그라인더나 밀링으로 삭제하고 국내산으로 마킹했는데,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위 업무를 전담시키고, 시험성적서까지 허위로 조작하는 등 범행수법이 대단히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본건 프랜지를 공급받은 거래처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삼성물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와 조선사인데, 이 회사들이 이 사건 프랜지를 사용한 곳은, 'LNG 저장탱크, 석유화학설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국가 석유화학 플랜트(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아람코 포함), 베트남, 캐나다 등 석유화학 플랜트, 태국 국영석유가스공사 설비, 선박 및 해양플랜트 등'인바, 이들 사업은 품질 적합 여부를 떠나, 최종 발주처에서 중국산이나 인도산 자체를 아예 쓰지 못하도록 벤더리스트를 지정한 사업이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거리낌 없이 범행으로 나아갔다"며 "최종 발주 회사들은 원산지 조작 프랜지가 실제 어느 공정의 어느 부분에 사용되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안전사고 여부를 떠나 중국이나 인도산 프랜지를 사용한 자체가 계약위반에 해당하므로, 국내 회사들이 향후 천문학적인 배상책임을 부담할 위험에 노출되었으며, 해외 발주 공사의 규모나 성격으로 볼 때 국내 회사들의 공신력 하락은 물론 국가적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피해회사 중 19개 업체는 '한국기업에 대한 이미지 실추 및 신뢰도 하락으로 수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해외 공사 수행에도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현대건설)'는 등의 사유로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