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성인 · 어린이 구역 '로프'로만 나눈 수영장에서 어린이 익수사고…수영장 측 책임져야"
[손배] "성인 · 어린이 구역 '로프'로만 나눈 수영장에서 어린이 익수사고…수영장 측 책임져야"
  • 기사출고 2019.12.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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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법경제학 이론 원용해 설치 · 보존상 하자 인정

수영장에 수심이 다른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함께 설치해놓고, '코스로프'로만 분리했다가 어린이가 성인용 구역에 빠져 사지마비 등을 입었다. 대법원은 특히 법경제학 이론을 원용하며 수영장의 설치 · 보존상의 하자를 인정, 주목된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1월 28일 서울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성동구 사근동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익수사고를 당한 정 모(사고 당시 6세)군과 정군의 부모, 누나가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상고심(2017다14895)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정군은 2013년 7월 6일 오후 3시 30분쯤 어머니와 누나, 이모와 함께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성동구 사근동에 있는 '살곶이 야외 수영장'을 방문했다가 오후 5시 5분쯤 튜브 없이 성인용 풀에 빠져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인근의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익수로 인한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현재 사지마비와 양쪽 눈 실명 등의 상태이다. 이에 정군과 부모, 누나가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3억 31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수영장의 수영조는 바닥면적이 882㎡인데, 그 중 절반은 1.2m 깊이의 성인용 구역이고, 나머지 절반은 0.8m 깊이의 어린이용 구역이다. 그런데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은 수면 위에 떠있는 코스로프(course rope)로 구분되어 있고, 수영조는 수심을 나타내기 위해 어린이용 구역의 테두리 부분에 '0.8m', 성인용 구역의 테두리 부분에 '1.2m'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130cm 높이의 '키 재기 판'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으나, 수영조의 벽면에 수심 표시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사고 당시 정군의 키는 113cm 정도.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어린이용 풀(80cm)과 성인용 풀(120cm)의 높이 차이는 40cm 정도로 아주 큰 차이는 아닌 점, 성인용 풀과 어린이용 풀을 반드시 물리적으로 구분하여 설치하여야 한다는 관련 규정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 등에 비추어 구분 설치를 하지 않은 점이 수영장의 설치 · 보존상의 하자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대법원은 "'공작물의 설치 · 보존상의 하자'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고, 위와 같은 안전성의 구비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공작물을 설치 · 보존하는 자가 그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로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며 "이 경우 하자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의 정도, 위험이 현실화하여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침해되는 법익의 중대성과 피해의 정도,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에 드는 비용이나 위험방지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법리는 '불합리한 손해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서 위험으로 인한 손해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부담과 비교할 것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법경제학에서의 비용 · 편익 분석임과 동시에 균형접근법에 해당한다"며 법경제학에서 등장하는 '핸드룰(Hand Rule)'을 참고했다. 즉,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를 하는 데 드는 비용(B)과 사고가 발생할 확률(P) 및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정도(L)를 살펴, 'B<P · L'인 경우에는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하여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작물의 점유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접근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하나의 수영조에 깊이를 달리하는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이 함께 있는 경우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가 분리되어 있는 수영장에 비해서 어린이가 보다 쉽게 성인용 구역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하여 성인용 구역에 어린이가 혼자 들어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는데,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사리분별능력이나 주의능력이 미약하여 수심을 잘 살피지 않고 들뜬 마음에 사고 발생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성인용 구역에 혼자 들어가는 등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쉽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물리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성인용 수영조에 어린이 혼자 들어감으로 인하여 발생할 사고 위험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수영장 시설에서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분리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어린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과 그와 같은 사고로 인하여 예상되는 피해의 정도를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분리하여 설치하는 데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 내지 이미 설치된 기존시설을 이와 같이 분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비교하면, 전자가 훨씬 더 클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며 "이러한 관점에서도 이 사건 수영장에는 설치 · 보존상의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있어, 수영장 관리자로서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피고에게 공작물 관리자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체육시설 관련 법령에서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같은 수영조에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설치 · 보존상의 하자를 당연히 부정할 수는 없다"며 "이 사건 수영장의 시설이 체육시설법상 시설 기준 등 안전 관련 법령을 위반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불법행위법상으로도 공작물 설치 · 보존상의 하자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음을 물론이지만, 그러한 법령 위반이 없다고 하여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어 불법행위법상 공작물 설치 · 보존상의 하자 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수영조의 벽면에 수심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원고 정군이 수영조에 들어간 곳이 어느 지점인지를 비롯하여 사고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이상 그러한 잘못과 사고 발생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본 것과 관련해서도, "이 사건 수영장에는 체육시설업의 시설 기준을 위반한 하자가 있다는 것인데, 수심표시를 수영조의 벽면에 제대로 하지 않은 잘못 등을 인정하면서도 수영장에서 키 113cm 정도의 어린이가 1.2m 깊이의 성인용 구역에서 물에 빠진 사고를 심리하면서 위와 같은 하자가 없었더라도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하자와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결국 (사고가 발생한) 수영장은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동일한 수영조에 두었다는 점과 수심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 등의 하자가 있고, 이러한 하자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이상 피고에게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