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실적 압박과 수사 민원에 극단적 선택한 경찰…공무상 재해"
[행정] "실적 압박과 수사 민원에 극단적 선택한 경찰…공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19.08.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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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 발병 · 악화"

업무실적 압박과 수사과정에서 제기된 민원에 우울증이 발병, 악화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찰관이 법원에서 공무상 재해 인정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7월 12일 자살한 경찰관 A씨의 배우자가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2018구합88890)에서 "순직유족급여 부지급처분과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1988년 7월 순경 공채로 임용되어 2008년 3월 경위로 승진한 A씨는 2017년 1월 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장으로 전보되어 근무하던 중 같은해 11월 26일 공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배우자가 순직유족급여 지급과 공무상요양 승인을 신청했으나, 인사혁신처가 "직무수행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성향 등과 같 공무 외적인 데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의학적 소견"이라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A씨는 2017년 1월 지능범죄수사팀장으로 전보된 이후 팀장으로서 상부로부터 업무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팀원들에게는 실적을 올리라고 질책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여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2017년 4월부터 9월까지 A씨와 팀원들이 수사한 사건에 관하여 수사과정의 위법이나 부실수사 등을 주장하는 민원과 소송 등이 다수 제기되었고, A씨는 민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민원이 발생하고 팀원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A씨는 2017년 6월 불면, 불안, 피곤 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다시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 6차례에 걸쳐 정신과 통원과 입원치료를 받은 A씨는 2017년 11월 25일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여 병원 응급실에서 CT촬영, 심전도검사, 엑스레이검사 등을 받은 결과 별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오랫동안 경찰공무원으로 복무하면서 수사과, 특히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공무상 스트레스는 A씨의 업무경력과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는 유형의 스트레스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A씨는 자신의 업무경력과 직책에도 불구하고 건강상 문제로 업무를 원만히 처리하지 못한 것에 더욱 자책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하고, "진료기록상 사망 전까지  불면과 이로 인한 피로, 식은 땀을 흘리는 등의 신체적 증상과 불안, 초조, 우울감, 기억력 감퇴 및 집중력 저하 등의 정신적 증상이 특별히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점, A씨가 작성한 일기에 따르면 2017. 9.부터 2017. 10.까지는 주로 우울증을 극복하자는 내용이었으나, 2017. 11.에 들어서서는 '피로가 극에 달했다. 가슴이 답답하다. 약에 의존해 잠을 잔다. 너무도 피곤한데 잠은 안 온다' 등의 내용이 기재된 점, A씨는 사망 전날인 2017. 11. 25. 머리가 아프다는 증상을 호소하여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결국 A씨는 우울증으로 인하여 나타난 증상들이 쉽사리 호전되지 아니하고 앞으로의 회복가능성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른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자신이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질병으로 인한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A씨가 1999년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은 내역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 진료기록에 의하면 A씨는 지속적으로 공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호소하여 왔으므로 기존의 정신과 진료 내역도 공무와 무관한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2015년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후 2016년에는 전혀 진료를 받지 않다가 2017년 6월 약 2년 만에 진료를 받은 것이고, 2017년에는 22회의 통원치료와 46일 동안의 입원치료를 받는 등 기존의 진료 양상과 확연히 다른 치료 경과를 보였다"며 "A씨는 2017년 초 무렵부터 받은 공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집중적으로 우울증의 발병과 악화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과 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된다"며 "A씨의 공무와 질병 및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의 자살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