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중복 개설 병원도 요양급여 지급대상"
[의료] "중복 개설 병원도 요양급여 지급대상"
  • 기사출고 2019.06.0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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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은 규율대상 달라"

이미 다른 곳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다른 의사 명의로 개설 · 운영하는 중복 개설된 병원이라 하더라도 이 병원에서의 치료 등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5월 30일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T병원의 개설명의자인 의사 홍 모씨가 "진료비(요양급여비용) 지급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5두36485)에서 이같이 판시, 홍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지평과 법무법인 동인이 상고심에서 홍씨를 대리했다.

의사 박 모씨 등 2명이 2008년 안산시로부터 개설허가를 받은,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T병원은 이후 개설명의자 변경을 거쳐 홍씨와 박씨의 공동명의로 되었다가 2012년 8월 홍씨 단독명의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홍씨 명의로 변경된 후에도 실제로는 박씨가 이 병원을 운영하였고, 홍씨는 박씨에게 고용된 의사일 뿐이었다.

홍씨는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부터 'T병원은 중복 개설 · 운영 금지를 규정한 의료법 33조 8항을 위반했다'는 통보를 받고, 2014년 1월 'T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2013년 12월 27일부터의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의료법 33조 8항은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 · 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박씨는 홍씨 등을 고용하여 T병원 등을 홍씨 등의 명의로 개설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직접 운영한 혐의(의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2014년 4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2억 80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박씨가 원고 명의로 T병원을 개설 · 운영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홍씨의 청구를 기각하자 홍씨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의료인으로서 자격과 면허를 보유한 사람이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건강보험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하였다면, 설령 이미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 · 운영하고 있는 의료인이 위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개설 · 운영하였거나,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 · 운영한 것이어서 의료법을 위반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사정만을 가지고 위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한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있는 요양기관인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요양급여에 대한 비용 지급을 거부하거나, 위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비용을 수령하는 행위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하여 요양급여비용을 받는 행위'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상당액을 환수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의료인으로서 자격과 면허를 갖춘 원고가 자신의 명의로 의료법에 따라 T병원에 관한 개설허가를 받았고, T병원에서 건강보험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인 환자에 대하여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한 요양급여를 실시한 후 피고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였다면, T병원이 박씨가 중복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라는 사유를 들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은 국민보건이나 국민 건강 보호 · 증진을 위한 법률이라는 점에서는 목적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국민건강보험법은 질병의 치료 등에 적합한 요양급여 실시에 관하여 규정하는 법률임에 비하여, 의료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인, 의료기관과 의료행위 등에 관하여 규정하는 법률로서, 입법목적과 규율대상이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요양기관으로 인정되는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의 범위는 이러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기관으로서 적합한지 여부를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리고 비록 의료법의 여러 조항은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 · 운영하는 것 및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으나, 그 의료기관도 의료기관 개설이 허용되는 의료인에 의하여 개설되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또한 그 의료기관의 개설 명의자인 의료인이 한 진료행위도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의 기준에 미달하거나 그 기준을 초과하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정상적인 의료기관의 개설자로서 하는 진료행위와 비교하여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한 요양급여로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의료법이 각 의료법 조항을 위반하여 의료기관을 개설 · 운영하는 의료인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처벌규정을 두지 아니한 것도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