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타사 세무조사 도중 발견한 '화주별 정산집계표' 근거 과세 무효"
[조세] "타사 세무조사 도중 발견한 '화주별 정산집계표' 근거 과세 무효"
  • 기사출고 2019.01.0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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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사실 확인 위한 최소한의 조사도 안 해"

타사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화주별 정산집계표'를 근거로 화물운송업체에 부가가치세 등을 부과했으나, 집계표 기재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아니한 채 세금을 부과한 것이라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과세처분의 흠이 중대하고도 명백하다는 것이다.

제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진영 부장판사)는 12월 19일 하 모씨가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를 합친 4억 4000여만원의 부과처분은 무효"라며 제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송(2016구합227)에서 이같이 판시,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씨는 2003년 5월부터 2006년 2월까지 'A운송'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서귀포항 일대에서 감귤 등의 화물 운송업을 했다. 제주세무서는 2008년경 B사 등 3곳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던 도중 발견한 '화주별 정산집계표'를 근거로 A사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B사 등의 거래처에 운송용역을 제공한 후 수입 금액의 신고를 누락했다며 하씨에게 4억 4000여만원의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사업이 부도가 나 신용불량으로 어렵게 생활하던 중 은행 거래 문의를 위해 농협에 방문했다가 세금이 부과된 사실을 알게 된 하씨가 2016년 1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처분을 안 날로부터 90일인 불복기간을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2001두7268 등)을 인용, "과세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그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중요한 법규에 위반한 것이고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며, 하자가 중대하고도 명백한 것인가의 여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당해 과세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함을 요한다"고 전제하고, "일반적으로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소득 또는 행위 등의 사실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한 과세처분은 하자가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할 것이지만, 과세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어떤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 이를 과세대상이 되는 것으로 오인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과세대상이 되는지의 여부가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하여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는 경우라면 하자가 중대한 경우라도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어 그와 같이 과세 요건사실을 오인한 위법의 과세처분을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조세 부과처분은 침익적 행정처분으로서 납세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기본적으로 행정청은 납세자에게 조세를 부과하는 데 있어 필요하고 상당한 조사를 하여 이에 근거하여 처분을 할 것이 요구되는데, 피고는 B사 등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B사가 작성한 서류(화주별 정산 집계표)에 근거하여 원고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을 했는바, 이 집계표는 기재 내용이 진실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 자료도 첨부되어 있지 아니하고, 단지 B사 등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문서일 뿐이므로, 집계표에 의해 원고의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사실관계가 밝혀졌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는 기재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B사 등에 이에 대한 객관적인 거래 근거 자료를 요구한다거나 원고와의 금융 거래 내역을 살펴보는 등의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집계표만을 믿고 이에 근거하여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게다가 원고가 운영하던 A운송과 B사 등은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거래의 상대방이었고, 피고가 B사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던 당시 원고는 처와 이혼하고 사업 부도로 인해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고 있어 소재파악이 어려운 상태였으므로, B사 등에서 임의로 A운송에 관련된 기재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B사 등이 작성한 집계표만으로는 당시 피고가 원고에 대한 과세대상이 있다고 오인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고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은 원고에 대한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소득 등의 사실관계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이루어진 것으로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의 사업자등록일 및 폐업신고일 등을 살펴 원고의 사업 기간보다 B사가 작성한 집계표에 나타난 매출누락 기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쉽게 알았을 것임에도,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원고가 사업자 등록일 이전부터 실제로 사업을 하고 폐업신고일 이후에도 사업을 한 것으로 보아 과세처분을 하였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이 객관적으로 원고의 사업 기간이 아닌 기간에 대하여 제3자가 작성한 자료에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사실관계가 적시되어 있는 경우 그 기간에도 원고가 사업을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할 것이지만, 곧바로 이를 들어 원고가 그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오인할 만한 객관적이 사정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적어도 행정청인 피고로서는 원고의 실제 사업 활동 여부에 관한 조사는 시행하였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