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여성 공무원이 성희롱 발언 들은 뒤 여섯달 지나 자살…자살에 대한 책임은 없어"
[손배] "여성 공무원이 성희롱 발언 들은 뒤 여섯달 지나 자살…자살에 대한 책임은 없어"
  • 기사출고 2018.12.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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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 인정 어려워"

여성 공무원이 직장 동료들로부터 성희롱 발언을 들은 뒤 6개월 지나 자살했다. 법원은 가해 동료들과 직장에 성희롱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자살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민사36부(재판장 황병하 부장판사)는 11월 14일 자살한 서울시 공무원 A(여)씨의 남편이 손해를 배상하라며 서울시와 가해 동료들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7나2042232)에서 성희롱에 대한 배상책임만 인정, 1심과 마찬가지로 "서울시는 위자료 3070만원을, 가해 동료 3명은 이중 370만 또는 600만원을 서울시와 연대하여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시 산하 연구원에서 보건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A씨는 2013년 8∼11월 가해자들로부터 성희롱 발언을 들어야 했다. 가해자들은 회식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A씨에게 큰 소리로 "모텔 가자"라고 말하거나, A씨가 동석한 자리에서 다른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체련대회가 1박 2일 일정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해당 연구원에게 "나랑 같이 자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가해자 중 한 명은 한 가수의 누드사진 유출 기사를 인터넷에서 본 뒤 A씨에게 "이거 원본 있는데 보내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후 가해 동료 중 1명은 A씨에게 전화로 성희롱 발언을 사과했고, A씨의 요청으로 A씨가 속한 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폭력, 성희롱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으로 직원교육이 실시됐다.

A씨는 약 6개월 후인 2014년 5월 28∼29일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고, 휴가 다음날인 30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에 A씨의 남편이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가 성희롱에 대한 배상책임만 인정, "서울시는 위자료 3070만원을, 가해자 3명은 이중 370만∼600만원을 서울시와 연대하여 지급하라"고 판결하자 A씨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가해자들의 성희롱 발언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해자 2명이 A씨에 대하여 한 발언과 다른 가해자 1명이 A씨가 동석한 자리에서 다른 여성 연구원에게 한 발언은 가해자들이 상급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A씨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한 행위로서 남녀고용평등법 12조에서 금지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이로 인하여 A씨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할 것"이라며 "가해자들의 발언은 민법 750조 소정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시에 대해서도, "이 연구원은 2013. 8. 22. 성희롱 예방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성희롱 고충상담 창구를 설치 · 운영한 사실, 2013. 8. 26, 2013. 12. 24. 전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사실은 인정되나, 인정사실만으로는 서울시가 피용자인 A씨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서울시는 가해자들의 성희롱 발언을 미리 예방하지 못함으로써 피용자인 A씨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서울시는 가해자들의 성희롱 발언에 대하여 가해자들의 사용자로서 A씨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성희롱 발언과 A씨의 사망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3회의 성희롱은 2013. 8. 29., 같은해 10월 중순, 같은해 11. 12. 발생하였고, 그 중 A씨를 직접 당사자로 한 것은 2013. 8. 29. 및 11. 12. 이며, 성희롱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하다고 보기 어렵고, 그 밖에 원고가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연구원의 근무환경이 A씨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2014. 5. 28 및 29. 휴가를 냈고, 2014. 5. 30 자택에서 자살하였는데, 피고 산하 연구기관인 연구소 직원들이 A씨가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연구소 근처에 있는 A씨의 자택에 방문하여 이를 발견 · 신고하였다는 사정만으로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연구소에서 발생한 일련의 행위와 관련된 피고의 과실과 A씨의 자살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결혼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남편의 진술 등에 비춰 A씨가 성희롱 발생 상당기간 전부터 우울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