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터키 여행 중 헤르페스 뇌염 발병해 인지 · 행동장애…여행사 책임 80%"
[손배] "터키 여행 중 헤르페스 뇌염 발병해 인지 · 행동장애…여행사 책임 80%"
  • 기사출고 2018.05.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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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30 시간 넘도록 진료 못 받아"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관광객이 해외여행 중 행동이상, 성격변화 등의 증세가 나타났으나 30시간이 넘도록 진료를 받지 못했다. 법원은 헤르페스 뇌염으로 진단받은 이 관광객에게 여행사가 80%의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김동진 부장판사)는 4월 26일 터키 여행 중 헤르페스 뇌염으로 인지 · 행동장애가 발생한 주부 고 모씨가 C여행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가합566844)에서 C사의 책임을 80% 인정, "C사는 1억 7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고씨는 C사와 여행계약을 체결하고 교회 목사, 교인들과 함께 11박 12일 일정으로 성지순례에 나서 2013년 5월 7일 오전 5시 40분쯤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렸다. 이날 오전 이스탄불 시내 관광을 한 고씨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같은날 오후 6시 30분쯤 카파도키아 인근의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했으나, 카이세리에 도착한 직후부터 구토를 하고 중얼거리거나 빵을 옷에 문지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다음날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거나 옷을 입은 채로 소변을 보는 등 외부에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기억장애나 행동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C사의 가이드와 현지가이드 등은 고씨를 곧바로 의료진에 데려가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급기야 5월 9일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고씨의 아들이 고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이드 등과 함께 현지 병원으로 고씨를 후송,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진단을 받은 고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후 국내로 후송되어 헤르페스 뇌염으로 진단받고 현재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인지 · 행동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고씨가 여행사를 상대로 8억 30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기획여행업자는 통상 여행 일반은 물론 목적지의 자연적 · 사회적 조건에 관하여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로서 우월적 지위에서 행선지나 여행시설의 이용 등에 관한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반면, 여행자는 그 안전성을 신뢰하고 기획여행업자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여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기획여행업자는 여행자의 생명 · 신체 · 재산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행목적지 · 여행일정 · 여행행정 · 여행서비스기관의 선택 등에 관하여 미리 충분히 조사 · 검토하여 여행계약 내용의 실시 도중에 여행자가 부딪칠지 모르는 위험을 미리 제거할 수단을 강구하거나, 여행자에게 그 뜻을 고지함으로써 여행자 스스로 그 위험을 수용할지 여부에 관하여 선택할 기회를 주는 등의 합리적 조치를 취할 신의칙상의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며, 기획여행업자가 사용한 여행약관에서 그 여행업자의 여행자에 대한 책임의 내용 및 범위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면 이는 위와 같은 안전배려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혓다.

재판부는 이어 "다수의 여행자가 참가하는 해외여행 일정을 계획 · 수립하는 피고로서는 여행 중 여행자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한 위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행선지 인근의 병원이나 기타 의료시설을 미리 조사 · 검토함으로써 응급 환자가 발생한 경우 즉시 병원에 데려가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여행의 행선지나 피고의 업종을 고려하더라도 피고가 이와 같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기대할 수 없다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제하고, "피고의 이행보조자인 가이드나 현지여행업자인 여행사의 가이드들은 원고의 건강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인식한 즉시 원고가 의료진의 진료를 받도록 조치하였어야 함에도 원고에게 이상 증세가 발생한 후 약 30시간이 경과하도록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바, 피고는 여행업자로서 피고의 가이드나 현지 여행사의 고용인인 가이드 등이 원고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는 여행 중 외부에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이상, 성격변화, 기억장애 등의 증상을 보인 후 약 30시간이 넘어서야 아들에 의해 비로소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비록 원고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여행 시작 전에 재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원고의 질병 등 건강 상태에 더하여 원고가 여행 중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채 장시간 방치된 점이 원고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여행 중 이상 증세를 보인 원고를 제때 의료진에 데려가지 않은 피고 측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의 과실로 인하여 헤르페스 뇌염에 따른 원고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고, 그에 따라 장애가 발생 또는 심화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고씨는 2008년경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소수포 피부염으로 치료를 받았고, 여행을 시작하기 이전인 2013년 5월 3일경 발열과 급성 인두엽으로 치료를 받았다. 여행 시작 직전엔 사람에 대한 지남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고는 여행 시작 이전부터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는데, 헤르페스 뇌염은 원고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재발하여 발병한 것으로 보이고, 여행을 위하여 출국하기 이전에 이미 원고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활성화되어 증상과 질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여행 직전 발열이나 급성 인두염으로 진료를 받고 일시적으로나마 지남력을 상실하였던 원고로서는 여행을 포기하거나 적어도 피고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고지할 필요가 있었다"며 피고의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