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의심스러울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사] "의심스러울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 기사출고 2013.09.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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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낙지 살인 사건' 무죄 확정"낙지에 의한 기도폐색 가능성 있어"
형사소송법엔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이른바 '낙지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피고인이 연인관계에 있는 여인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사시켰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했을 수도 있어 무죄를 선고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 이유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9월 12일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도 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한 것처럼 꾸며 2억원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모(31)씨에 대한 상고심(2013도4381)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살인과 보험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절도,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충분히 주기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등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로만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이러한 방식에 의한 유죄 인정을 위해서는 공소사실과 관련이 깊은 간접증거에 대하여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므로, 간접증거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을 인정할 때에는 그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며, 간접사실 하나하나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간접사실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 과학법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0년 4월 19일 새벽 인천의 한 모텔에서 여자 친구 윤 모(사고 당시 21세)씨를 질식시켜 숨지게 한 뒤 윤씨가 낙지를 먹다 질식해 사망한 것처럼 가장해 보험금 2억원을 타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김씨는 그해 3월 중순경 보험모집인에게 보험가입자를 소개시켜주고 소개료를 받아 온 자신의 고모를 통해 윤씨로 하여금 '상해사망 2억원, 질병사망 2억원 등'을 보장내용으로 하는 보험에 가입하게 했고, 보험의 수익자는 얼마 안 지난 4월 초순경 법정상속인에서 김씨로 변경되었다. 피해자 윤씨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천에서 외조부모, 여동생과 같이 생활하다가 피고인을 만났다.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대로 피해자가 낙지로 인한 기도폐색으로 질식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며 살인 및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 검사가 상고했다.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질식의 원인은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기도폐색 ▲코와 입이 강제로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비구폐색 ▲목이 조이거나 눌려 숨을 쉬지 못하는 경부압박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 경부압박으로 질식하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남은 가능성은 피해자가 낙지를 입에 넣었다가 숨이 막힌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처럼 피고인과 무관한 기도폐색인지 아니면 당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인의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비구폐색인지 여부. 비구폐색이면 피고인의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

그런데 비구폐색에 의한 질식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얼굴 등에 상처 등의 흔적이 있다는 점과 그러한 흔적이 없을 경우 피해자가 본능적인 생존의지조차 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잃어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하는데, 위와 같은 흔적이 발견된 바 없으며, 피해자가 술을 마신 것만으로 당시 본능적인 생존의지조차 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어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는 피해자가 무심코 입에 넣을 경우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보이고, 당시 피해자가 낙지를 먹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피고인의 변명처럼 피고인이 손가락으로 낙지 때문에 질식 상태가 된 피해자의 입안에서 낙지를 꺼냈거나 피해자가 뱉어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그 밖에 검사가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의 범행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재판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피고인으로 보험수익자 변경 피해자가 원해"



항소심 재판부는 또 살인의 범행동기로 의심을 받은 2억원의 보험가입 및 보험금 수령과 관련해서도, 피고인이 자신을 키워왔던 고모의 생계를 돕는 차원에서 피해자에게 고모를 통하여 보험에 가입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반드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고, 피해자가 보험가입 당시부터 (이혼한 부모 대신) 피고인을 보험수익자로 지정하려 하였다는 사정 등을 들어 범행동기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연장선상에서 보험금 편취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씨의 항소심 변호인은 김태진 변호사와 법무법인 두우앤이우, 상고심 변호인은 김태진, 박소영 변호사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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