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이 본 국민참여재판 1년
국선변호인이 본 국민참여재판 1년
  • 기사출고 2009.05.2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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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변호사]
필자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자의 국선변호인이 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은 존속살해 및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영미 변호사
그동안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이 고의를 부인하는 등의 이유로 무죄선고가 이루어진 적은 있었지만, 범행 자체를 완전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 판결이 처음이어 더욱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했던 변호인으로서, 이 사건을 중심으로 국민참여재판 1년을 되돌아본다.

사흘에 걸친 재판 동안 배심원들은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배심원들은 내내 진지한 눈빛으로 재판에 임했다. 증인에게 의문점들을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검사와 변호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무엇보다도 최후변론 당시 배심원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재판으로 지쳤을 텐데도 그들의 눈은 빛났다.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인생과 사망한 피해자 입장이 걸린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판단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이전에 진행했던 참여재판 사건에 비해, 이번 참여재판 진행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국선변호인 지원 부족

검사와의 균형상 국선변호인도 2인이 참가했고, 검사와 변호인은 모든 기회를 대등하게 보장받았다.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참여재판 국선변호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검찰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국선변호인 개인이 기계와 자료를 구입하며 준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참여재판에 적응해 가고 있는 반면, 변호사들은 아직까지 그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변호사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않는 것은, 피고인의 이익 여부가 가장 관심인 변호인들에게 참여재판제도가 피고인에게 유리한지 여부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 만족도 높아

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한지 1년이 지났다. 이제 국민참여재판도 틀을 형성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점점 더 많은 피고인들이 참여재판을 신청하고 있다. 배심원들도 예상보다 훨씬 잘 소환에 응하고 있으며, 재판 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심원들의 재판참여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이 제도가 왜 도입되었는지, 이것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의문점이 들 때가 있었다.

우선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사건의 경우, 그 공판 일정으로 인한 제약 때문에 통상적인 절차를 거칠 때보다 입증이나 변론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배심원들이 본업이나 일상을 미뤄 두고 며칠씩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나 문화가 아직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사안이 복잡하고 쟁점이 많은 사건이라면,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하더라도, 배제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공판일정을 사흘 이상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참여재판

참여재판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배심원들 출석을 고려해서 2~3일 안에 재판을 끝내야 하므로 재판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으로서는 변론시간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형사재판이 피고인을 위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배심원들만을 위한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주객이 전도된 재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배심원 소환이 어려운 일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재판진행이라는 형식을 중시한 나머지 피고인을 위한 형사재판이라는 실질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배심원들이 본업에서 위협받지 않고 여유있게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음은 재판이 여러 날 진행되는 경우, 배심원 보호가 문제된다. 즉, 기일 동안 배심원들을 귀가하도록 해야 하는지, 지정장소에서 숙박하도록 해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배심원들 신변 자체를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배심원들이 다른 외부의 편견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문제이다. 배심원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재판에서 드러나는 증거만 기초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배심원들이 귀가할 경우, 그들은 사건 관련 정보나 의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외부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배심원들이 공판 중에는 격리되어 보호되도록 하는 방법도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 배심원 평의의 권고적 효력도 문제이다. 법에는 배심원들의 평의와 의견은 판사를 기속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무죄 평의를 뒤집고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경우가 전체 사건의 10%를 넘는다.

무죄 평의 10% 이상 뒤집혀

배심원들이 법리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사실인정에서 배심원과 재판부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후자가 문제이다.

같은 증거를 보고 같은 증언을 들었음에도 배심원 의견과 재판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평의한 것이라면 말이다.

법은 현실의 반영이다. 법조인들의 법 논리와 배심원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사회와 현실을 반영하는 배심원들의 생각이 존중되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취지도, 국민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하고 국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가치를 재판과정과 결론에 반영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항소심이 1심 평의를 파기하는 것도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범실시가 끝나는 4년 후에는 배심원 평의에 기속력이 인정되기를 기대한다.

이영미 변호사(teethym@seoul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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