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인플레 우려
고개드는 인플레 우려
  • 기사출고 2009.05.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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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요즘 은행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통화량 증가와 초저금리의 혜택을 실감하고 있을 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6%대였던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가 3%대로 줄어 매달 내는 이자가 몇 개월 사이에 절반으로 줄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명목 대출금리는 0%이거나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려섰다.



◇이상일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가 0%라고 하면 은행에 돈을 넣어둔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조그만 이익이 남아도 은행 예금보다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 대출을 받거나 더 싼 금리의 사내 대출 등을 받아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간간이 보인다.

감자 값 올라 금자 돼

주가가 빠르게 올라 종합주가지수가 1300대로 오른데다 부동산값은 일부 지역의 경우 금융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감자 값이 상승해 '금(金)자'가 됐을 정도로 생활필수품 물가도 뛰었다. 이를 두고 시중에 엄청나게 풀린 돈의 위력이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 조짐이라는 해석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런 인플레 우려를 보면 얼마 전까지 디플레를 걱정하며 1930년대 대공황까지 거론하던 것과 격세지감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디플레 우려가 인플레 우려로 바뀐 것은 엄청나게 풀린 돈이 빚을 부작용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펠드스타인 교수는 지난 4월 20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의 사상 유례없는 대폭적인 재정적자와 중앙은행의 민간 금융기관 보유 유가증권의 매입 급증이 향후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현재 미국의 통화량이 이미 연 15% 정도씩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통화량 연 15%씩 늘어"

미국 금리도 경기 부양과 부실기업 구제를 위해 푼 풍부한 유동성으로 마이너스 수준이다. 더욱이 미국은 달러를 찍어 경기부양에 나서다보니 재정이 머지않아 대규모 적자로 파탄날 것이고, 미국 국채가 휴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래서 달러와 미국 국채를 던지고 원자재와 금을 사들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지금이야말로 부동산을 사들일 최적의 시기"라고 한발 앞서는 발언도 했다.



한국은행이 그동안 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리던 추세에서 한발 빼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일단 기준금리를 2%로 동결시킨 것도 물가상승 우려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올 연말에는 금리를 팍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은행권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인플레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 상승, 농산물 부족에서 비롯

앞으로 물가 상승 가능성과 관련 디플레와 인플레 중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 국내 물가가 오르는 것은 일단 환율 상승과 일부 농산물의 단기적인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통화이론적으로 봐도 인플레를 유발하는 것이 단순히 통화 공급량 문제만은 아니다. 통화량이 많아도 사람들이 이 돈으로 투자할 곳이 없거나 투자해서 얻을 기대할 수익이 아주 적다면 돈은 시중에 그대로 풀린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 상태로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너도 나도 돈을 쓰지 않으니 금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은행 돈을 대출받아서라도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사업이건 투자를 할 경우 돈 흐름이 빨라져 금리가 오를 수 있다. 통화의 양보다는 통화의 유통속도가 디플레냐 인플레냐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의 '사업의욕'을 부추겨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 들어가느냐에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길 저길 피하려다 정말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드는 꼴이 될까 걱정이다.

이자 부담능력 따져 빚 써야

요즘 나타나는 이런 저런 조짐을 보면 풍부한 유동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통화당국이 금리를 서서히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개인들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초저금리라고 무턱대고 빚을 늘렸다가는 언젠가 금리상승이란 변수에 뒤통수를 맞아 비틀거릴 수도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의 이자 부담능력 안에서 빚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일 경제칼럼니스트(bruce5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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