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0개월 맞는 중국의 '반독점법'
시행 10개월 맞는 중국의 '반독점법'
  • 기사출고 2009.05.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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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기업에 초점…한국기업 주요 타깃 우려"재량적 내용, 예외사유 많아…집행 추이 지켜봐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반독점법(이하 '반독점법')을 통과시킨 이래, 지난 2008년 8월 1일부터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있다.

◇임석진 미국변호사
중국의 이 반독점법은 우리나라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해당된다. 선진국에 비교하여 중국의 경쟁법 도입은 비록 시기적으로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진시키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반독점법의 시행에 들어간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거시적으로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좀 더 성숙하고 시장친화적인 경쟁체제로 이행케 하는 모멘텀을 제공하는 한편,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영환경에 일정한 변화를 예고하는 또 하나의 규율이 마련된 셈이다.

제재 강도 높아

총 8장 57조항으로 구성된 반독점법은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과도한 경제력 집중(기업결합), 행정력에 의한 경쟁제한행위 등 경쟁법 집행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여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 규정과 유사한 내용들이 많으나, 제재가 보다 강도 높게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각 조항에는 경쟁당국의 재량적 조치가 가능한 내용이나 경쟁법의 적용이 제외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앞으로 중국 반독점법의 실제 집행과정에서 그 원칙과 기준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느냐 하는 것이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관건이 될 것이다.

반독점법의 적용 자체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사안인 데다, 경쟁당국 간 역할분담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반독점법의 시행 초기에 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율의 대상이 되는 국내외 기업 가운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중국의 반독점법이 자국 기업보다는 다국적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반독점법의 강한 제재 내용을 모르고 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을 때 예상보다 높은 법률적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수출기업도 영향

특히 이 법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물론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무역 및 직접투자에서 중국에 의존도가 큰 한국기업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은 또 반독점법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별도의 감독기구를 만들지 않고 기존의 산업 담당 행정기관에서 법을 집행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중국이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반독점법을 활용할 것이란 예측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중국의 반독점법에는 기술향상 및 신제품 연구개발 등 자국기업의 독점을 허용하는 예외사유를 포괄적으로 두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의 반독점법은 자국의 국영기업과 통신, 철도, 전기, 은행 등 규제산업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조사가 외국기업에 집중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나아가 반독점법은 실행이 되지 않은 합의만으로도 담합으로 인정될 수 있기에 경쟁당국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중국의 반독점법에서는 고정가격, 생산량 제한, 시장분리와 관련해 기업 간의 일치된 공동행위 모두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역외적용 명문화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중국이 이번에 반독점법을 마련하면서 역외적용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을 오랜 기간 운영해 온 국가에서도 역외적용은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도입하였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이 국내에서 가격담합 행위를 해 적발된 경우에도 수출품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경우 중국 정부가 이를 처벌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국유기업이 지역별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 사실상 반독점법은 중국에 진출하거나 수출하는 외국기업에 주로 적용될 수 있고, 또한 현재 거의 모든 국내 기업이 중국과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카르텔마저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란 점이 우려된다.

결국 중국의 반독점법에는 시장경쟁을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국내외 기업 간의 차별적용을 낳게 될 가능성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을 위해서는, 중국 집행기구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무엇보다 사전 예방활동이 중요할 것이다. 또 조사 시에는 적극 협조하되 불복 절차, 자진신고 감면제도, 동의명령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루사이트 인수 제동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반독점법을 내세워 해외기업간 인수 · 합병(M&A)에 번번이 제동을 걸고 있다. 일례로 지난 주에는 일본 화학섬유업체인 미쓰비시레이온의 영국 루사이트(Lucite)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이 반독점법을 이유로 해외 M&A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지난해 11월 미쓰비시레이온은 영국 화학업체인 루사이트를 16억 달러에 인수키로 하고 올 1월까지는 인수를 마무리지을 계획이었으나, 중국 정부가 반독점법을 내세워 이들의 M&A 허가를 보류하면서 급기야 거래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반독점법을 시행한 중국은 본사를 중국 내에 두지 않더라도 판매망과 생산라인을 중국에 두고 있는 경우 M&A때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또 지난달 글로벌 청량음료업체인 코카콜라가 중국의 음료업체인 후이위안주스그룹유한공사(Huiyuan)를 24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한 데 대해 반독점법을 내세워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코카콜라는 중국 정부의 반대로 인수에 실패한 후이위안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코카콜라는 후이위안에 일부 지분 참여하는 형식으로 제휴하는 방안을 마련하였고, 양측이 곧 협상에 착수한다고 한다. 코카콜라는 쥬스를 생산하지 않고 있고, 후이위안이 중국 쥬스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업체라는 점에서 후이위안을 놓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으나, 중국 정부는 이 두 회사의 합병을 허가해 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안호이저-부시 인수 조건부 승인

앞서 작년 11월에는 인베브의 안호이저-부시 인수를 조건부로 겨우 승인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중국의 태도에 대해 무조건적인 외자수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외국기업 자문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인베브와 안호이저-부시, 코카콜라와 후이위안의 M&A의 경우, 중국 정부는 이를 자국기업 브랜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중국 정부는 해외 기업들의 움직임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는 약 2만개의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므로, 중국 반독점법 시행은 우리 기업들에게 의미가 클 것이다. 또 세계 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중국 내에서 경쟁법 집행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 · EU에 의해 주도되어 온 세계 경쟁법 집행 판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반독점법은 대체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쟁법을 적용하는데 있어 기존의 사례가 중요한데 반해 중국의 경우에는 누적된 사례가 전무하므로 앞으로의 집행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독점법이 시행된다는 것은 곧 시장경제의 본격적인 활성화로 풀이되므로, 국내 기업들이 반독점법을 잘 준수한다면 보다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임석진 미국변호사는 미 브라운대와 콜럼비아 대학원, 보스톤 칼리지 로스쿨과 런던대 킹스 칼리지 로스쿨을 나왔습니다. 법무법인 양헌(Kim, Chang & Lee)에서 미국변호사로 활약중입니다.

본지 편집위원(sjlim@kimchangl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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