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잡셰어링
확산되는 잡셰어링
  • 기사출고 2009.04.2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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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불황기에 실업이 가장 문제되자 일자리 나누기인 '잡셰어링'(Job Sharing)이란 말이 요즘 흔히 쓰이고 있다. 해고하지 말고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근무일수를 줄여 동료 직원의 일자리를 지켜주자는 것이다.

◇이상일
요즘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신입사원의 초봉을 깎거나 임원들의 월급 '자진 반납' 등의 비용 절약분으로 인턴사원을 채용하는 방식이 정부 주도하에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무급휴가 등 잡셰어링을 할 경우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주며 세무조사까지 면제해주겠다고 지원책을 밝혔다.

실업 막자는 고육지책

사실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3%일 경우 30여만개 이상 일자리가 감소하고, 연간 실업자수도 100만명 이상에 달할 전망이어서 실업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잡셰어링은 새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든 실업만이라도 막아보자는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정의에 따르면, 잡셰어링은 직무 분할을 통해 한 사람의 풀타임 근로자 일을 2사람 이상의 아르바이트나 임시직 사원들이 처리하는 것이고, '워크셰어링(Work Sharing)'은 근무시간을 줄여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함으로써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많이 회자되는 잡 셰어링은 ILO에 따르면, 워크셰어링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이 주당 36시간의 노동조건을 28.8시간으로 줄여 2만여개의 일자리를 지켜낸 것이 잡셰어링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시적인 경기불황에서 가능하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해고 등 잡컷(Job Cut)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처음 시작

실제 국내 기업들은 해고와 잡셰어링 사이에서 고심한다. 외국기업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불황이라고 무자르듯 직원을 쉽게 해고하는 분위기는 못되고 어떻든 같이 밥 먹고 살아온 직원들을 될 수 있는 한 지키려고 한다. 필자가 아는 한 여행사 대표는 여행객 수요가 작년 동기대비 절반수준으로 줄었다고 걱정했다. 직원 200여명의 임금을 일부 삭감해 여지껏 한명도 자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직원 50여명인 한 중소기업에서는 작년 말 직원들의 임금을 직급별로 10~50% 삭감하면서 버텼다. 일감이 줄고 노는 직원들이 생기자 직원들이 보름씩 무급휴가를 가는 식으로 해고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급휴가의 경우 형평성 차원에서 누구나 가야 하며, 기존 핵심 인력의 휴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인력이 강제 휴가를 갈 경우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문제가 있으며, 이들만 휴가를 보내지 않는다면 형평상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만 계속 무급휴가를 가도록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무급휴가를 가는 식으로 처리하고, 실제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면 당사자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일 잘하는 직원은 불만

또 잡셰어링의 시행과정에서 자신이 능력이 있다거나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파이를 나눠먹고 고통을 분담하자는 방식에 반발한다. "해고를 하지 왜 일을 안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까지 떠안느냐"는 것이다. "나도 살기 어려운데 내 임금이 더 깎이고 싶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잡셰어링은 따라서 조직 내의 단결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시행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하다. 위에서 찍어 눌러 강제적으로 시행할 만한 조직상부의 힘이 강력하든가 노조 등 조직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잡셰어링의 또 다른 전제는 조직 구성원의 임금이 생활에 필요한 적정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임금이 최저한의 생계가 가능할 정도로 빠듯할 경우 잡셰어링에 따른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시급으로 받는 공장 근로자들의 경우 잡셰어링에 대해 당장 반발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급 근로자는 잡셰어링 반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사람들은 단순히 월급을 못 받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적인 자긍심까지 잃는다고 한다. 가족을 거느린 가장의 경우 고통이 더할 수밖에 없다. 잡셰어링은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극심한 경기불황에서 어쩔 수 없이 채택하는 대안이다. 그것의 시행이 어렵고 장기대책이 될 수 없을지언정 사회적으로 널리 시행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상일 경제칼럼니스트(bruce5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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