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방식 LBO'와 배임죄 성부
'합병 방식 LBO'와 배임죄 성부
  • 기사출고 2009.04.2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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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 변호사]
LBO(Leveraged Buyout)는 기업 인수 · 합병을 통하여 취득하고자 하는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담보로 제공하여, 기업인수자금을 외부로부터 조달하고, 그것을 기초로 특정한 회사를 인수하는 기법이다.

◇강희철 변호사
LBO를 통한 M&A는 인수자가 적은 자본으로 인수 가격이 높은 기업의 매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인수자의 차입채무에 대한 담보로 제공하거나, 인수자와 피인수기업간 합병 등을 통해 피인수회사 자산을 재원으로 인수자가 차입한 인수대금을 변제하는 과정에서 피인수회사 이사에게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 여부가 자주 문제된다. 참고로 미국에는 배임죄라는 죄가 없기 때문에, LBO와 관련하여 형사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미국엔 배임죄 없어

이와 관련, 최근 부산지방법원은 2009. 2. 10. 선고2008고합482 판결(이하 대상판결)에서 '합병 방식에 의한 LBO' 사례와 관련하여 그 유효성을 인정하고, 피인수회사 이사의 업무상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였는 바,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단, 대상판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법원 판례와 그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LBO의 주된 유형으로는, ①자산양수도 방식(인수자가 피인수회사의 주주들로부터 주식을 인수하면서 인수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인수자 자신이 차입하고 피인수회사는 담보 또는 보증을 제공하는 방법)과 ②합병 방식(인수자가 특수목적법인(이하 SPC)을 설립하여 SPC로 하여금 차입을 하도록 한 뒤, 이러한 차입금에 인수자가 SPC 설립시 출자한 자본금을 합한 자금으로 피인수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고, 이어서 SPC를 피인수회사에 합병시킴으로써SPC가 매입한 주식과 차입금 채무를 대상회사에 승계시키는 방법)을 꼽을 수 있다.

기존 대법 판결은 배임죄 인정

기존에 대법원은 2006. 11. 9. 선고 2004도7027판결(이하 '신한 case')에서 "만일 인수자가 피인수회사에 아무런 반대급부도 제공하지 않고 임의로 피인수회사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게 하였다면, 인수자 또는 제3자에게 담보 가치에 상응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피인수회사에게 그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여 자산양수도 방식 LBO와 관련, 업무상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바 있다.

먼저 부산지법에서 선고된 대상판결을 검토해 보자. 이 사안은 합병 방식에 의한 LBO가 문제된 경우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매우 복잡하나, 동 건에서 수행된 합병 방식의 LBO를 설명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간략히 도표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LBO 도표
동양그룹의 임원인 X는 공개매각 예정인 한일합섬을 LBO를 통해 인수하기로 하고, 동양메이저산업(SPC)을 설립하였다. 그 후 동양메이저산업은 한일합섬의 신주와 회사채의 인수를 조건으로 한일합섬 공개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획득하였다[도표 ①].

이어서 X는 한일합섬 인수계약에 기하여, A은행 등 3개 은행으로부터 동양메이저산업의 명의로 대출받은 자금 중 1,700억 원과 동양메이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하여 마련한 1,302억 원 등 합계 약 3,002억원을 조달하였고[도표 ②], 동양메이저산업은 이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제3자 배정 방식에 의한 한일합섬 신주인수대금을 납입하였다. 그 결과, 동양메이저산업은 한일합섬의 지분 중 62.6%를 확보하여 대주주의 지위를 취득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동양메이저산업 대표이사인 X는 다른 동양그룹 이사들과 함께 한일합섬의 등기 이사로 취임하였다[도표 ③].

그 후 동양메이저산업과 동양메이저가 합병하고(존속회사 : 동양메이저) [도표 ④], 이어 동양메이저와 한일합섬이 합병하였다(존속회사 : 동양메이저) [도표 ⑤]. 합병 이후 동양메이저산업 대표이사이자 한일합섬 이사였던 X는 동양메이저로 하여금 한일합섬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성 자산 1,800억원을 전액 인출하게 하여 A은행 등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였다[도표 ⑥].

한일합섬 돈으로 채무 상환

검찰은 동양메이저산업 대표이사이자 한일합섬 이사인 X를 업무상 배임죄(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기소하였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은 대상판결에서 X의 업무상 배임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구체적으로, 부산지법은 대상판결에서 "기업의 인수, 합병의 동기에 합병 이후에 피인수합병기업 내의 자산으로 인수 차입금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합병의 법률적, 경제적 효과를 전혀 무시한 채 이를 피인수합병기업에 대한 배임 행위라고 단정하여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합병으로 인해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은 인격적으로 합일하여 일체가 되고, 그 효과에 의해 합병 이후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재산은 혼연일체가 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되므로 합병 이후에 원래는 피인수기업이 보유했던 자산으로 존속하게 된 인수기업이 원래 부담하고 있던 채무의 변제에 사용하는 것은 합병의 주된 다른 동기였던 경영상의 이유와 결합하여 기업의 내부적, 자율적 자금운용행위와 특별히 구분되거나 다른 성질의 것이라 보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즉, LBO를 추진하겠다는 동기에 의한 합병(설시 내용으로는 '합병 이후에 피인수합병기업 내의 자산으로 인수 차입금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합병)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수행된 합병인 이상 피인수기업의 이사인 X에게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단, 대상판결은 이같은 결론에도 불구하고, 합병에 의한 LBO를 수행한 피인수기업의 이사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대상판결 상 "합병대상인 회사의 재무구조가 매우 열악하여 합병을 하게 되면 일방의 재산잠식이 명백히 예상됨에도 합병을 실행하여 그로 인해 재산잠식 등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합병을 주도한 이사들의 배임여부가 문제될 수도 있다고 할 것"이라거나, "한편, 동양메이저산업과 한일합섬이 합병되었을 경우, 만약 동양메이저산업이 사실상 자본금이 거의 없는 형식적인 회사에 불과하다면 한일합섬으로는 실질적인 자산의 증가는 없이 오직 동양메이저산업의 대출금 채무만을 부담하게 되는 결과 배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언급한 부분은 주목하여야 한다.

중앙지법 판결은 배임죄 인정

참고로 합병 방식의 LBO가 문제된 사안은 아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의 2005고합113,123 판결에서는, 부실회사와의 합병과 관련하여, '자산 및 부채 등 기업가치에 대한 정밀한 기업실사 없이 부실회사와 합병하는 경우' 합병을 주도한 임원들에게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한 바 있다. 대상판결의 설시 부분은 이 판결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LBO는 미국에서 1930년대 처음 등장한 이래, 1970년대를 거치면서 대형 M&A를 가능하게 하는 기법으로 각광받으면서 자본시장의 성장을 견인하였으며, 현재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M&A시장에서 사모투자전문회사들의 주요 투자기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SPC를 설립하여 피인수회사를 인수하는 합병 방식의 LBO는 여러 차례 사용된 바 있고(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 이랜드의 한국까르푸 인수 등), 그 결과 LBO가 본래 추구하는 긍정적인 요소, 예컨대 시너지 효과나 경영효율성 증대, 레버리지 효과, 조세효과 등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합병 방식의 LBO를 수행하는 피인수기업 이사에게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 성립될 수 있다면 어떠한 조건 하에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는지에 대해서는, 특히 '신한 case' 이래 실무상 상당한 논란이 있었으나, 이 문제를 직접 다루는 판결은 없었다.

'신한 case' 이후 주목할 판결

대상판결은 이러한 합병 방식의 LBO가 그 자체로서 위법한 것은 아님을 확인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내용 면에서도, 대상판결은 불법한 동기를 실현하는 합병이라는 이유로 배임죄를 적용하기 위하여는, '합병 결과 얻게 되는 법제상, 경영상의 이익을 감안한' 손해 여부를 엄격히 증명해야 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판결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사안은 ①SPC가 먼저 모회사에 합병되고, ②피인수기업이 모회사에 합병되었다는 점에서 '모회사가 피인수기업을 합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합병 방식에 의한 LBO를 이용할 때 통상 SPC와 피인수기업이 합병하는 것과 사안을 달리 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을 전형적인 합병 방식에 의한 LBO에 대해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상판결은 검찰 항소에 따라 현재 부산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므로(2009노184), 아직 확고한 선례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대상판결에 대한 고등법원 및 대법원 판결이 주목된다. 아울러 실제로 합병 방식의 LBO를 하고자 하는 경우, 여전히 피인수기업 이사의 배임죄 문제에 대해 충분한 사전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강희철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hckang@yul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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