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서면 장황하다고 재판장이 신경질"
"준비서면 장황하다고 재판장이 신경질"
  • 기사출고 2004.09.17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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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변론권 침해 사례' 모아 대법원에 전달
변호사들이 판사들의 재판 진행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변협(박재승 회장)이 전국의 회원변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법정에서 발생한 변론권 침해 사례'에 따르면 조정 · 화해 절차에서의 부당하고 편파적인 강제권 남용이 여전하고, 부당하고 고압적인 소송지휘권 행사도 없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한변협이 6월22일부터 8월14일까지 전국의 변호사 6276명에게 팩스로 공문을 보내 수집한 12건을 분석해 보면 조정 · 화해 절차에서의 불만을 토로한 게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방회별로는 서울회가 7건, 대구 · 부산회 각각 2건, 제주회 1건 등의 순서로 침해 사례가 수집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24일에 있은 대법원과 대한변협과의 간담회에서 대한변협이 법관의 변론권 침해 등에 대한 시정을 건의하자 대법원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변협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변협은 조사 결과를 9월 14일 대법원에 전달하고, "변론권 침해와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정 · 화해 절차에서의 변론권 침해=서울의 A변호사는 1심에서 피고측이 승소한 사건을 맡아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재판장이 1심에서 패소한 소송대리인의 이름을 친숙하게 부른 후 첫 기일에 조정을 권하면서 1심 판결이 사실상 잘못되었다는 예단을 강력하게 암시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의 B변호사는 1심 승소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재판부가 강제적인 화해(조정)를 권고, 원심판결 취소 및 원고 패소판결을 선고하겠다는 협박 등을 하여 화해(조정) 실적을 올리려 했다고 변협에 통보했다.

대구의 C변호사는 당사자가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수차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조정기일을 여러번 속행하면서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산의 D변호사는 조정 화해절차에서 재판부가 조정의 기술적인 방법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한쪽 당사자를 퇴장(배제)시키고, 다른 당사자를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조정을 시도하고 있어 이는 퇴장당한 측 소송대리인이나 당사자의 변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산의 E변호사는 조정기일에 변호사 퇴정을 명령하는 것은 비일비재이고, 심지어 재판부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 변호사 없이 조정기일에 출석하라고 종용하는 예가 많다고 했다.



◇편파적인 형사재판 · 국가상대 소송=대구의 F변호사는 법원이 필요 이상으로 검찰에 입증을 촉구하면서 공판기일을 수 회 공전시켜 피고인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고, 검찰의 증거조작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죄추정의 법리에 충실하여 입증이 없으면 무죄 선고를 과감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제주의 G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사가 신청한 증인은 두말 없이 받아들여 증인신문을 마친 뒤, 피고인이 증인을 신청하자 크게 화내면서 나무라는 것은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판부가 사건의 경중을 따지거나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감수하라는 등 불공정한 재판 진행을 통해 피고에게 정식재판 취하서를 쓰도록 유도했다고도 했다.

서울의 H변호사는 외국에서 벌어진 국가배상과 관련된 소송을 수임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재판장이 소송대리인의 준비서면이 너무 장황하다며 신경질을 부리더라는 것. 반면 상대방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주간의 유예기간을 주면서 준비절차를 진행하는 등 국가소송수행자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성토했다.



◇독단적인 재판 진행=서울의 I변호사는 교통체증으로 5분정도 법정에 늦게 출석했는데 상대방 변호사가 담당재판부와 잘 아는 사이였는지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해 버렸고, 이 사실을 모른 I변호사는 80분이나 재판정에서 기다리다가 다른 재판이 모두 종료 된 후에야 비로소 재판이 진행된 사실을 알게 됐다.

원고 소송대리인(본인)과 피고 소송대리인이 동의하여 사전에 서면으로 변론연기신청을 하였음에도 판사가 아무런 통지없이 2회 쌍불 처리하고, 이후 시간변경신청서를 제출하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3회 쌍불로 소취하 간주 결정하고 법정을 폐정했다. 본인이 다시 기일지정을 신청하자 판사는 재판을 종료한 오후 5시5분께까지 본인과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것이 현저한 사실이라는 거짓 이유로 소송종료 판결을 했다.(서울회)

원고가 산재사고를 당하여 손배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원고가 신체 감정을 신청한 상태에서 계속하여 기일이 공전됨에도 불구하고 기일 추후지정을 하지않고 변론기일을 지정하였다. 더군다나 신체감정서가 도착하기 전에 변론을 종결하고 일방적으로 판결을 선고하여 산재사고에 대한 신체감정 결과도 없이 판결을 내렸다.(서울회)



최기철 기자(lawch@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