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관이 본 연쇄살인범 유영철
보호관찰관이 본 연쇄살인범 유영철
  • 기사출고 2004.09.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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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무부 서울서부보호관찰지소는 마포구, 용산구, 서대문구와 은평구에 거주하는 약 1,500명의 보호관찰대상자를 지도 · 감독하면서 사회봉사명령과 수강명령을 집행하고 있다.

◇박재봉 소장
소년법에 근거한 소년 보호관찰대상자는 전체대비 약 40%인 약 600명인데 반해 형법 및 특별법에 근거한 20세 이상의 성인 보호관찰대상자는 900명에 이르고 있다. 보호관찰관들은 이들의 판결문이나 재판기록 등과 초기면담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need)와 문제점 등을 파악하여 보호관찰기간 동안의 처우계획을 수립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범죄의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기가 불분명하거나 이상심리에 의한 사건, 그리고 전통적인 범죄유형과는 다른 신종범죄로 인해 보호관찰관들이 긴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전 법원이 양형단계에서 보호관찰관으로 하여금 피고인의 성격, 성장과정, 범행동기, 피해 회복 여부 등에 대한 제반사항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형량에 참고토록 하기 위한 판결전조사(Presentence Investigation)를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에 대해 요구해 왔다.

본고에서는 법원의 판결전조사와는 별개로 유영철에 대한 보호관찰관인 필자의 개인적 소회를 간략히 적고자 한다.

살인은 전쟁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있어서도 사회적으로 용서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생활의 안전을 위협하여 사회불안심리를 가중시킨다.

더군다나 일정한 기간동안 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에는 극도로 범죄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배가시킨다.

그렇다면 이처럼 극악무도한 유영철은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일까?

필자는 유영철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내용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몇 가지를 스크린했다.

불우한 유년시절, 해체된 가정, 어린 시절의 소년원 수용, 반복되는 교도소 생활, 그리고 출소후 사회의 냉대 등은 전형적인 한국형 범죄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필자는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유영철의 전과기록을 살피면서 의문점을 하나 가졌다.

1년에 한번꼴로 재판받으면서 보호관찰제도 혜택 못받아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년원 입원 이후 2003년 9월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기간 동안 전과 14범인 유영철은 매년 한번꼴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음에도 최소한의 사회내 재범통제기회이자 원활한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보호관찰처분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9년 8400여명의 소년보호사건 · 소년형사범 등 소년범에 국한하여 도입되었던 보호관찰제도는 1997년 일반 성인 형사범에까지 전면 확대되어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사람이 2003년 기준으로 14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양적 팽창은 보호관찰제도 본연의 장점인 사회내에서 비행청소년 문제성 제거, 교정시설 수용으로 인한 범죄학습 차단, 교도소 출소 후 사회 적응력 함양 및 효율적인 사회자원 연결과 더불어 보호관찰직원들의 정열적인 업무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유영철은 이러한 보호관찰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필자는 이런 가정을 해 보았다.

사회봉사명령 등 기회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고등학교 2학년 때 유영철이 수용시설인 소년원에 가기에 앞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보호관찰소에서 정기적으로 보호관찰관과 만나 심성을 가다듬거나 자신의 자화상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가졌었다면 성인이 되어 범죄를 업으로 삼는 직업범죄인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영철은 반복되는 교도소 수감으로 만난 재소자들과의 정서적 교류 속에서 자신은 사회에서 버려진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거동이 불편하고 사지가 마비된 어르신이나 장애아들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렸거나 열악한 환경 하에서 남을 위해 즐겁게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해맑은 얼굴을 사회봉사명령을 통해 만났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전과자가 차지하는 범죄발생량 비율이 높아지면서 누범들의 재범율을 낮추기 위해 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는 보호관찰관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유영철은 단순절도에서 강도, 강간으로 점점 범죄성이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교도소 출소 후 아무런 국가통제를 받지 않았다.

만약 유영철이 출소 후 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관의 정기적인 주거지 수시 방문점검 및 야간외출금지 등 행동통제를 받았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잔혹한 범죄를 할 수 있었을까?

유영철이 한번쯤 위에서 가정한 상황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면 21명의 무고한 피해자들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박재봉 서울서부보호관찰지소장(p3442@moj.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