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와서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와서
  • 기사출고 2009.02.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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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재 변호사]
법무법인 원의 김윤재 미국변호사가 역사적인 오바마 미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미국에 있을 때 민주당 사람들과 함께 공공봉사에 나선 인연으로 초청받았다는 게 김 변호사의 전언이다. 그의 취임식 참관기를 싣는다.-편집자

2009년 1월20일 오후 12시를 기해 미국은 오바마 시대를 열었다.

◇김윤재 미국변호사
이것은 단순한 정권의 교체가 아니었다. 어느 역사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오바마 이전의 역사와 오바마 이후의 역사로 평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국제사회는 구체적 변화 없이도 오바마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시작에 대해 들떠있다.

취임식 당일은 이러한 국내외의 기대와 희망에 대한 설레임을 보여주듯 수백만의 인파가 워싱턴 D.C.를 가득 메웠다. 차량통제로 인해 워싱턴 D.C.로 들어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지하철은 새벽부터 발 딛을 틈이 없이 혼잡했다. 이곳에서는 출퇴근 시간에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힘들게 내려서 찾아간 행사장 입구는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초청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 된 공간은 오전 7시를 조금 넘으면서 더 이상 인원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켄터키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50대 가장은 초청장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자녀들에게 이 순간에,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오해 마시라. 그는 백인이다).

민주당과 함께 수 십년 간 각종 민권소송을 다루어 온 한 노변호사는 이러한 대담한 변화가 평화롭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오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동시에 앞으로 오바마 대통령 아래서 변화할 미국을 기대하라며 들뜬 표정을 보였다.

무엇이 이처럼 오바마를 열광하게 하는가.

새 아메리칸 드림 가능성 확인

단기적으로는 부시정부의 종식에 대한 안도와 환영에 기인할 것이다. 지난 8년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반미는 도덕적 정당성을 얻었고 미국민은 추락된 국가위신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다. 그의 당선은 미국사회가 원죄처럼 앉고 있던 인종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제공했다. 흑인사회에서 대통령의 꿈은 '우리'가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용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노예제도에서의 해방 이후에도 100년 이상이나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부여 받지 못했고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목숨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흑인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악용되어 공화당은 백인 근로계층을 대상으로 반 흑인정서에 호소하는 선거캠페인을 전개하여 이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남부전략이다.

1964년 민권법안에 서명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주당은 이 법안의 서명을 통해 한 세대 동안 남부를 잃을 것' 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했고 이것은 적중했다. 그러나 도덕적 선택을 했던 존슨과 민주당은 40년만에 그들의 선택의 정당성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정치의 장기적 전망과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또 하나는 오바마의 삶이 과거 20세기에서 보여 온 아메리칸드림의 전형과는 다른 21세기적 아메리칸드림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케냐에서 온 검은 피부의 유학생 아버지와 남부 시골 캔사스주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고 이후 의붓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다니다 다시 하와이에서 외조부모 밑에서 성장 한 다인종적이고 다문화적 경험과 대학졸업 후 첫 직장으로 선택한 빈곤지역에서의 공동체조직과의 체험은 과거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오바마의 성장배경은 미국의 엘리트층이 가지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동시에 국내외적으로 미국사회가 진정으로 열려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바마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은 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 왔다는데 있다. 지난 2년간의 선거캠페인 과정과 78일간의 인수위 과정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의 국정운영을 보면 그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냉정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포용하며 설득하려는 진정성의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행보와 발언은 지난 40년간 워싱턴이 잃어버렸던 초당파적 모습이다.

그는 60년대 민권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당시 운동세대가 가지는 기득권세력에 대한 분노가 들어있지 않다는 장점을 가진다. 오바마는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정치권에도 정치인에게 소통과 설득의 능력 그리고 진정성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자질인가를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슬람 방송과 첫 TV 인터뷰

대통령 오바마의 일주일 역시 그 진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는 백악관에서 행한 첫 번째 텔레비전 인터뷰를 이슬람 방송국과 가졌다. 이 인터뷰에서 상호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서로의 견해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며 지난 8년간 서방세계의 '적'으로 각인되어 온 그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끄는 국무부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는 오바마의 외교안보는 국무부를 중심으로 협상과 외교로 진행될 것임을 상징한 행보이다.

국방부의 힘도 정보부의 정보는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수단은 외교가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끝으로 경기부양책 통과를 위해 의회를 방문하면서 민주당도 아니고 초당파지도부 모임도 아닌 공화당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그들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물론 이러한 오바마의 행보와는 별개로 오바마 앞에 놓인 도전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선 경제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 속에서 국내외에서 가진 오바마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높다. 작은 실수에도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오바마는 취임식을 비롯하여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현재의 위기가 회복되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현실을 인식시키면서 기대치를 조절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회복이 그의 임기 안에 진행된다 해도 내년까지 가시적 성과가 없을 경우 2010 중간선거에서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연속해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그 지지자들의 성화로 더 진보적 처방을 내세우고 있고 반면 공화당은 이유 있는 반대를 내세우면서 오바마의 국정운영 협조에 주저하고 있다.

당장 얼마 전 통과 된 하원의 경기부양책은 단 한명의 공화당의원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아 워싱턴의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었다. 국제적으로도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이며, 중동의 문제는 몇 년 내에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러시아는 다시 제국의 욕망에 꿈틀거리고 북한의 핵 문제도 각론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이처럼 오바마대통령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그 다양성과 심각성에서 대공황 당시의 루즈벨트 이후 어느 정부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는 케네디 당시 보다 더 높다 하겠다.

"미국민, 국제사회 모두 새로운 책임 받아들여야"

그러나 새로운 변화는 항상 심각한 도전의 극복을 통해 오곤 했다. 미국은 오바마를 통해 단지 변화의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인종문제에 대한 새로운 역사도 경제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변화도 국제사회에서의 새로운 역할과 위상도 모두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앞으로 4년 또는 8년 뒤 오바마 시대가 보여주었던 변화와 희망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었는지 평가받게 될 것이다.

오바마는 취임연설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미국민과 국제사회 모두가 '새로운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희생과 절제, 참여와 협력을 호소한 것이다.

오바마의 탁월한 연설에 열광할 수는 있지만, 오바마시대의 성공은 국정운영의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공에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김윤재 미국변호사(법무법인 원, kyj@o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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