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서 들려오는 디플레 공포
송년회서 들려오는 디플레 공포
  • 기사출고 2009.01.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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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인플레 무서운 줄 알아도 디플레(Deflation) 무서운 줄은 모른다.

◇이상일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경험 범위 안에 디플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늘 물가가 오르는 것만 봤지 전반적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적이 거의 없었다. 이제 디플레는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자 인플레의 반대말에서 그 의미가 확장돼 경제활동의 침체와 저하를 뜻하게 되었다. 생산 감소와 실업률 감소 등이다.

요즘 송년회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디플레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성형외과에서 환자가 줄었다. 병원측은 매출액이 줄게 되니까 의사를 한명 줄었다. 의사가 감소하니 환자들이 덩달아 더 줄었다." "기업들이 홍보예산을 줄이고 긴축에 들어가자 광고제작 물량이 격감했다. 이에 따라 광고대행사의 매출이 줄어 몇몇 중견 광고대행업체가 인원감축을 하거나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다." "2009년에는 신문사들이 고전해 일부 신문사들이 도산할 것이다." "자금난의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도 팔리지 않는다. 회사채 발행이 줄어드니 증권사의 법인영업부 뿐 아니라 회사채 신용평가를 해주는 평가회사가 완전히 놀고 있다"

돈 들어 이혼도 연기

이런 현상의 일부는 이미 나타나고 있고, 더욱 비관적인 전망도 꼬리를 문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일파만파 한국 경제의 구석구석을 위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외식을 줄이고 웬만하면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니 이른바 '삼식(三食)이'도 늘어갈 것 같다. 그래서 할인마트에서는 쌀과 라면이 매출 1위 품목으로 등장했다. 갈등 부부들도 돈이 지출되어야 하는 이혼수속을 연기하는 판이라고 한다.

모두 돈을 안 쓰고, 그래서 기업들이 매출액 감소의 몸살을 앓고 있다. 해고나 신규채용 중단→사회의 소비 감소→저성장→생산감소 등의 악순환으로 치닫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국책사업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잘 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일본이 지난 1990년대 10년간 불황에 헤맸다.

이런 디플레의 메카니즘과 타결책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가 즐겨 인용하는 사례가 있다. 150쌍의 젊은 부부들이 참여하는 베이비 시팅(아기돌보기) 조합이 어떻게 잘 돌아가지 않아 기능정지 상황에 빠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실화라고 한다.

베이비시팅 조합의 해결책

즉, A부부는 외출하는 B부부의 아이를 맡아주고 쿠폰을 받는다. A부부가 앞으로 외출할 때 다른 부부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길 권한을 갖는 쿠폰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부부들은 앞으로 여러 번 외출할 때 필요한 쿠폰을 확보하려고만 할뿐 외출을 꺼리고 그에 따라 남의 집에 아기를 덜 맡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합 내에서 쿠폰의 부족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쿠폰의 부족사태는 바로 서로 남의 아기를 돌보아주려고만 하고(현실경제에서의 '현금확보'), 아이를 맡기지 않는 상황(현실경제의 '지출감소')을 뜻한다.

이런 최소한의 경제모델이 진짜 '불경기'에 들어간 것이다. 베이비시팅 조합 사례에서 크루그먼 교수가 지적한 인식의 포인트는 중요하다. 다시 말해 조합이 기능정지 상황으로 몰린 이유는 부부들이 ▲아기돌보기를 잘못하거나 ▲가치관이 잘못되거나 ▲아기돌보기의 매너리즘에 빠진 때문이 아니었다! 건전한 시스템에서도 예측불허의 상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조합의 불경기를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경제학자들은 부부들이 매달 최소한 2번은 외출하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아기돌보기 기회는 늘고 쿠폰 공급은 증가했다.

현실 경제의 불황을 그저 돈을 더 찍어내는 일로 타개할 수 있다고 크루그먼 교수는 지적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오래 이어진 것은 인위적인 조작을 정부나 중앙은행들이 거부하고 버틴 탓이다.

초기처방은 정석대로

최근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잇따라 내려 미국의 경우 거의 제로금리 수준까지 내려갔다. 산업별로 몇 백억 달러씩의 구제금융 지원 계획을 발표해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 풀려나가고 있다. 은행대출을 거의 공짜로 빌려 쓰는 시대가 되었고, 달러가 풍부해져 달러 값이 앞으로 휴지가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적어도 초기 처방은 정석대로다.

문제는 투자심리이다. 금리가 바닥으로 떨어져도 전혀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으면, '유동성 함정'으로 빠진다. 너도 나도 눈치를 보고 선뜻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를 나서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상일 경제칼럼니스트(bruce5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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