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고소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형사고소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 기사출고 2004.09.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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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승 교수]
형사소송법상 고소는 일부 친고죄 등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그 시기 또한 제한이 없다.

◇최영승 교수
그만큼 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쉽게 수사기관에 대하여 소추를 구할 수 있고, 수사기관으로서도 형법범 중 30% 이상이 고소로부터 비롯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고소는 수사의 훌륭한 단서인 것이다.

일단 범죄의 피해자가 고소를 하면 검찰사건사무처리규칙상의 각하 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한 수사기관의 사건부에 일련순으로 등재됨으로써 입건(立件 : booking)으로 이어지고, 이는 피고소인이 피의자의 신분으로 됨을 의미한다.
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편리하고 유익한 제도가 고소인 것이다.

반면에 피고소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로부터 수사기관에 고소장이 접수될 뿐만 아니라 무슨 내용으로 고소가 되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적어도 경찰서나 검찰청으로부터 피의자신문을 위한 출석을 요구받고서 그것도 신문에 이르러서야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수사기관으로부터 출석을 요구받은 피고소인으로서는 출석할 때까지 고소사실과 향후 전개될 방향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와 같이 고소 제기를 당하면 죄인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에다 일단 기소되면 본안재판 사건 중 99%이상이 유죄로 이어지는 우리 형사절차의 현실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의 중요성은 피고인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피의자 단계에서의 방어권 행사의 실기(失機)로 인하여 형사절차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소인이 수사기관의 신문을 받기 이전에 고소된 내용을 미리 알고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고소사실을 사전에 열람, 등사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부여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명백히 민사적인 문제까지 형사고소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고 피고소인의 사전 고소사실의 부지(不知)를 이용하여 고소내용도 다소 과장하여 표현하는 우리의 법 현실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이 당사자주의 이념을 지향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우월적 지위의 당사자인 검사에 대응하여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의 전제로서의 피의자의 방어권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다른 사유로 피고소인의 신병이 구금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증거자료의 수집, 제출 등에 있어서 사실상 제약이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또한 특히 고소가 많은 재산범죄의 경우 고소된 사건 3건 중 1건꼴로 수사기관 자체의 '혐의없음'처분으로 종결된다는 사실은 피고소인으로 하여금 고소사실의 사전 열람, 등사의 필요성을 더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혐의없음'으로 처분되는 피고소인의 예에서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하여 사법경찰관리나 검사가 선입견을 가지고 신문에 임함에 의하여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는 않는지, 기소되는 피의자 중에서도 순전히 형사소송 기술면에서의 초기 대응이 미숙하여 억울하게 피소되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수사기관으로서는 고소사실의 사전 열람, 등사기회가 자칫 증거의 인멸 혹은 도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의무는 죄 있는 자를 발견하여 처벌하는 것에도 그 목적이 있지만 한편으로 죄 없는 자를 형사소송의 절차로부터 조기에 해방시키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고 하여야 한다.

문명화된 형사절차는 오히려 후자를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야말로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자를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의 격언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형사절차의 전 과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한다는 형사소송의 이론적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수사의 형태가 점차로 불구속수사의 원칙으로 나아가는 현실적 입장에서도 이러한 수사기관의 우려는 더 이상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피고소인의 신문을 위하여 출석요구시 아예 고소장을 사본하여 피고소인에게 송달케 함으로써 최초 신문시부터 피고소인의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하게 함은 어떠할까?

당사자주의 구조를 수사단계까지 확대하여 실질적 당사자주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의 충실을 기할 수 있음은 물론 수사기관으로서도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함으로써 비롯되는 실체적 진실 발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차례에 걸친 피고소인의 신문을 하는데 드는 형사사법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경원대 법정대학 겸임교수 · 법학박사/본지 편집위원(everpine2002@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