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회 사건이 남긴 교훈
다복회 사건이 남긴 교훈
  • 기사출고 2008.12.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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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최근 강남의 부자들이 '다복회'란 귀족계에 들었다가 파탄이 나는 것을 보며 계 때문에 잠시 고통을 겪었던 옛날 생각이 났다.

◇이상일
필자의 어머니가 15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생전에 어머니가 계를 탔으니 나머지 불입금을 내라는 다른 계원들의 독촉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 어려운 형편의 서민으로 별로 금융지식도 없었던 어머니로부터 가끔 곗돈 부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불평을 들었지만, 목돈의 계를 탔다는 이야기는 생전에 전해 듣지 못했었다. 그리고 500만원의 곗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아는 바 없었다.

그런데 계원 20여명이 필자 회사 근처로 몰려와서 200여만원의 나머지 계 불입금을 물어내라고 아우성을 쳤다. 대낮에 날벼락이었다. '아는 바 없고 들을 바 없다'고 버티다 며칠만에 두 손을 들었다. 그들이 집단행동을 하며 자칫 회사로 들이닥칠까 걱정이 되는 탓도 있었지만, 얼굴 아는 어머니 친구분들도 있어 설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고인의 자식인 나를 닥달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액땜하는 셈치고 물어주었다.

신용으로 유지되는 계약

물론 금융에 어두운 어머니가 곗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줬을 개연성이 있지만 세상을 떠나자 돈을 갚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 당시 실감한 것은 계라는 것은 어떤 법적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문서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신용'으로 유지되는 계약이란 점이었다.

계는 크게 나누어 받을 돈을 경매방식으로 적어내는 낙찰계와 순번을 정해 타는 번호계가 있다. 즉, 앞에 타는 사람은 적은 돈을 내고 일찍 목돈을 조달하는 잇점이 있고, 뒷번호는 늦게 목돈을 타는 대신 이율이 높은 것이다. 다복회의 경우 앞 순번은 주로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갔고, 수익률이 높은 후순위는 주로 공직자 부인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모 공직자 부인은 26개월간 6000여만원을 내고 1억원을 타간 것으로 알려졌다.

계는 그야말로 금융에 대한 지식이 짧은 사람들의 돈놀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다복회 사건을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다복회는 고학력자들이 많이 산다는 서울 강남의 부자들이 가입했으며, 인기 연예인 뿐만 아니라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도 있었고, 정치인이나 공기업 사장 부인들도 회원이었다고 한다.

정치인, 공기업 사장 부인도 회원

다복회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회원과 돈을 끌어 모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계원이 300여명에 계 불입금이 2200억원대라는 것인데, 과연 이런 대규모 계가 다른 계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신용만으로 유지됐을까 하는 점이다.

계주인 51살의 여자가 계원들에게 높은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빨간 수첩을 주는 귀족 마켓팅을 했다고 하지만 계원들이 계주의 무얼 보고 어리숙하게 당했을까. 계주의 신용을 담보할 만한 플러스 알파, 즉 사회적 신분이 있었거나 그것을 위장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그야말로 모두들 눈에 뭐가 씌운 것이리라. 이런 개연성 모두를 추정해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다소 무모해 보이는 다복회의 가입도 어떤 면에서는 주식이나 펀드 투자와 비슷하다. 최근 고점대비 반토막 이상 난 펀드를 두고 '왜 묻지마 투자를 했나' 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도 있고 이를 비난도 하겠지만, 1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남들 따라 위험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투자했다.

펀드는 직접 주식투자보다 안전하다고 누구나 생각했다. 큰 은행과 증권사들이 가입을 적극 권유해 믿고 따랐다.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의 땅값과 주가도 오래 오를 줄 알았다. '중국 주식의 가격 상승은 장기적인 대세'라는 내로라하는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을 믿었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구체적으로 따져볼 지식이 없었다.

사실 펀드는 자기가 잘 몰라도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편리함이 있었다. 그저 믿을만한 금융기관들이 권해서 별로 따져보지 않고 투자한 것이다. 너도 나도 주위에서 가입하니 대세에 뒤질세라 가입한 점도 있다.

금융기관이 권해 따져보지 않고 투자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 대신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해주는 수천억원, 수조원 대의 펀드를 과연 역량있는 개인 펀드 매니저가 잘 투자할 수 있을까 의심해보는 사람은 적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잘 모를 수 있는데 외국을 그렇게 잘 알 수 있는 펀드매니저가 있을까, 한 사람이 수천억원의 펀드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하루에 수천억원씩 들어오는 펀드를 맡을 만한 노련한 매니저가 얼마나 될까를 따져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름있는 기관이니까 턱 마음놓고 믿었을 것이다.

다복회 역시 뭔가 계원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나 대상이 있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거나 그 지위의 인척인 사람이 고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주위의 믿을만한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쉽게 따라간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보면 정상적이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일지라도 다복회 가입자는 그렇게 믿을만한 정황이 있었을지 모른다.

거품 붕괴 직전 사회분위기 공통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방심해 주위의 달콤한 투자 권유에 넘어가는 것은 여러 번 되풀이돼 온 거품 붕괴 직전의 사회 분위기란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남의 말을 쉽게 믿어주고 마음의 방어벽이 허술해지는 게 호황기 사람들의 심리상태이다. 지난 수년간 주식과 땅 값이 뛰면서 사회가 붕 떠 있었고, 사람들의 판단력이 마비되었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거품이 터진 후에야 '아차' 하고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것은 실수를 깨닫는 시점이 이번처럼 다복회 계주가 철강회사를 인수한다며 곗돈을 무모한 곳에 투자하다가 실패한 뒤 돈을 들고 잠적한 뒤거나 펀드 가격이 반토막난 후라는 점이다.

은행이나 투자운용회사들도 흔들리는 요즘에서야 사람들은 그런 기관들조차 실수를 저질러 엄청난 액수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심한 불황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그 누구의 말도 전폭적으로 믿지 말았어야 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마음이 끌리는 지위, 크기, 조직 그리고 빨간 수첩도 의구심을 갖고 자기 머리로 되짚어 봤어야 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오래 가는 안정성은 없다고 말이다.



이상일 경제칼럼니스트(bruce5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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