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최근 주가가 종합주가지수 1000선 이하로 폭락하고 환율이 달러당 1400원선이 넘어 급등했다. 한국에 10년 전과 같은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넘어 이제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을 예상하는 소리도 나온다. 파키스탄 등이 줄줄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제 실물경제 침체라는 최악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어 앞으로 수년간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파키스탄 등 IMF 구제신청
불과 1년 전만 해도 주가 대세 상승론 등 낙관론이 넘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선 언저리를 오르내릴 때였다. '주가가 장기 대세에 들어섰다'거나 '저축 시대를 지나 이제 주식 투자 등으로 한국인의 자산 운용 패턴이 달라졌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신문지면에 흔했다.
현재의 위기는 사실 어느 날 날벼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수년 전부터 주가 급등과 호황의 저 밑바닥에서 진행되던 문제들이었다. 경제의 암덩어리가 커지고 커져 가는데도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으면서 '건강하며 더 튼튼해질 것'이란 전망과 분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낙관론자들에게만 돌을 던질 것도 아니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은 몰랐고 그런 낙관론에 즐겨 취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전망과 의견이 얼마나 토대가 약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사실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을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랫동안 저금리 체제에서 돈을 많이 풀었던 결과가 부메랑처럼 '돈의 보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은행들은 집을 사라고 부추기며 집값을 웃도는 대출을 해주었다. 그 결과가 엄청난 인간의 재앙으로 돌아오는 양상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위기 시발점
작년 하반기 본격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금융사와 대형 헤지펀드의 몰락을 거쳐 9월 이후에는 세계적인 증시폭락과 금융기관 연쇄 파산으로 번져갔다. 이제 세계적으로 돈이 돌지 않는 금융경색 현상이 나타나는데다 실물경기의 장기 침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단초는 금융이지만, 앞으로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거나 대출을 받지 않았던 서민들의 생계도 위협받을 정도로 위기는 확산되고 있다.
가방끈이 길고 임금도 높게 받는 고급 인재들이 수두룩한 금융기관이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던가.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받은 사람이 갚지 못할 경우 문제가 불거질 텐데도 사실 집값이 계속 오를 때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교수가 대(大)은행가들에 대해 평가했던 말은 인상적이다.
"소박한 환경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돈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들의 지능에 대해 과장된 인상을 갖는다. 투기자들이나 일부 대은행가들의 방식을 보면 그들이 특별한 재능 즉, 경제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이다."
미국뿐 아니다. 금융기관들이 마구 돈을 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행들이 대출과 자산 1위 은행이 되려고 경쟁을 했다. 과잉대출을 해주고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집값이 하락세로 반전되면서 전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위기가 시작되면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이나 펀더멘탈은 괜찮으니 문제없다'는 식의 낙관은 통하지 않는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태국 바트화의 폭락이 홍콩과 한국 등 아시아로 삽시간에 번지듯이 위기의 전염성은 강력하다.
금융위기 전염성 강력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의 10년 전 아시아금융위기 분석 보고서는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한국은 그때의 교훈조차 되새기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위험이 확산되면 "견실한 경제에도 예측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달러를 버는 것보다 나가서 더 쓰는 바람에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9월초만 해도 한국 정부의 고위직들은 "미국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강건너 불보듯했다. 정부 관계자가 달러를 구한다고 외국으로 건너가서 외국투자가들이 0.2% 포인트를 더 얹어달라니까 배짱 튀기며 '아직 (한국은) 급하지 않다'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그리고 달러 부족으로 연일 환율이 뛰는 위기를 맞았다.
적어도 한국 정부와 관료들을 보면 은행가들 못지않게 능력과 통찰력에서 의심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10년 전 외환위기의 교훈을 배우지도 못했고 자신의 생각이 과연 옳은지 점검하는 신중함도 없다.
한국의 현재 문제점은 금융위기다. 빨간 불이 켜졌어도 방심하다가 제대로 준비나 대처를 못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를 분석하며 내놓은 해법은 필요하면 외환통제를 하고 금리를 과감히 내리라는 것이었다. 재정적자도 감수하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IMF가 한국에 주문한 고금리와 재정건전성 처방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고금리 IMF 처방 잘못"
현재 과거 IMF의 실수는 되풀이될 것 같지 않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 25년이나 지속된 것은 각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국제간의 공조가 없었던 탓이다. 이제는 세계 각국이 협조하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돈도 과감히 풀고 있다. 그래도 실물경기 침체는 수년간 간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인간의 실수도 반복된다. 뼈저린 교훈을 얻지 않는 이상 고통도 더할 것이다.
이상일 경제칼럼니스트(bruce5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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