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현 변호사]
[이미현 변호사]
  • 기사출고 2004.05.06 00: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몰랐을까?
개구리를 산 채로 요리하고자 할 때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그 순간 바로 튕겨져 나와 요리를 할 수 없지만 찬 물이 들어 있는 냄비에 넣고 서서히 물의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는 ‘음, 뜨뜻하고 기분이 좋구만’ 하면서 편안한 자세로 즐기다가 잘 익은 개구리 요리로 둔갑하여 상에 오르게 된다고 한다.

이미현 변호사
1997년 말, IMF구제금융문제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사람들의 첫마디가 “도대체 어쩌다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과연 IMF금융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일까?

1996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들은 왕성한 투자활동으로 인해 자금수요는 많았던 반면 국제금리에 비해 국내금리가 워낙 높아 가능한 한 외화차입금을 늘리고자 하는 상황이었기에 외화차입금과 관련된 법률자문수요가 상당히 많았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외화차입과 관련된 법률자문업무는 1996년 말부터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1997년 초반 삼미특수강의 부도, 기아사태등을 겪으면서부터는 거의 전무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 무렵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한 외국계 은행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 벌써 몇 달전에 본점으로부터 신 건은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와 계속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1997년 6월경이었으니까 이는 정부가 IMF구제금융을 논하기 최소한 6개월전부터 이미 외국금융기관들은 한국 경제의 위기조짐을 읽고 한국기업에 대한 신규대출을 중단시켰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필자와 같이 금융 언저리에서 일을 하던 사람에게도 이미 1997년 초반부터 그 조짐이 느껴졌다면,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몰랐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럼에도 뜨뜻한 물에서 편안하게 즐기다 요리로 둔갑하고 마는 어리석은 개구리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IMF 금융위기로 야기된 부실채권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는 요즘, 신용카드 부실채권이라는 냄비 안에서 익어가고 있는 또 다른 개구리를 발견하고 우리는 아연해하고 있다.

사실 신용카드 부실채권문제는 몇 년전 길거리에서 신용카드가 남발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태평스럽게 잘도 지내던 금융당국은 어느 날 갑자기 신용한도 통합관리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 결과 갑자기 늘어난 신용불량자들로 인해 신용카드사들은 휘청했지만 그래도 카드빚을 대출로 전환하여 분할상환받고 동시에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등의 자구책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카드빚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면 총선에 도움이 안되서 그랬는지 작년 가을 자산관리공사가 느닷없이 신용카드빚을 탕감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그러자 그 동안 조금씩이나마 분할상환을 해오던 연체자들까지도 일제히 상환을 중단해 가뜩이나 어렵던 신용카드사들의 활로를 아예 막아버렸다.

필자가 이 무렵 법률자문을 하고 있던 모 신용카드회사의 경우에는 외국금융사로부터의 자금조달이 거의 성사되었는데 갑자기 연체율이 오르자 상대방에서 대출의사를 슬그머니 철회해버리는 바람에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말았다.

정부에서 급하게 온도 조절 스위치에 손을 댄 것이 얼떨결에 반대로 돌려 오히려 급격하게 온도를 올려 버린 꼴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카드연체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이 옳으냐 하는 도덕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어떤 조치를 하려면 제 때에 효과있게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가 실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교훈은 다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조만간 뜨거워질 물인 줄 모르고 들어간 것은 아닐텐데, 왜 들어갔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뜨거워질 때까지 넋놓고 있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미현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및 미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으며,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7년부터 법무법인 광장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뉴욕주 변호사이기도 하며,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국세청 국세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mhl@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