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으로 출국해 체류하던 중, 스위스 금융계좌에 있는 220억여원을 신고하지 않은 것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특별한 사정 없이 국내로 귀국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되어 이 기간 중 공소시효 진행이 정지된다고 판결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A는 스위스에 있는 금융회사에 개설된 자신 명의 해외금융계좌 잔액이 2016년 2월 29일 기준 220억 9,700여만이었음에도, 그 해외금융계좌정보를 2017년 6월 30일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국제조세조정법 위반)로 기소됐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제조세조정법)에 따르면, 해외금융회사에 개설된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중에서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의 보유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해외금융계좌정보를 다음 연도 6월 1일부터 30일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은 2022년 5월 A의 해외금융계좌를 조사해 국제조세조정법 위반행위를 적발, 같은 해 6월 7일 A의 세무대리인을 통해 A를 상대로 문답조사를 실시한 후 같은 날 20억원의 과태료부과 사전통지를 했다. 이에 앞서 5년의 공소시효 완성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22년 4월 22일 홍콩으로 출국해 체류 중이었던 A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세무조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조세와 회계 전문가 등을 통해 자문을 받았으나, 특별한 사정 없이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A는 공소시효 기산일인 2017년 7월 1일부터 5년이 지난 2022년 7월 28일 귀국했다.
A는 항소심에서 "홍콩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어 국제조세조정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음을 알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었을 뿐,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홍콩으로 출국해 있던 기간 동안의 이 사건 위반행위에 의한 범죄의 공소시효는 정지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이 사건 위반행위에 의한 범죄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은 늦어도 서울지방국세청 소속 세무공무원이 피고인의 세무대리인을 통하여 피고인을 상대로 이 사건 위반행위에 대한 문답조사를 실시하고 그 세무대리인이 위반행위에 대한 20억원의 과태료부과 사전통지를 받은 2022. 6. 7.부터 피고인이 국내로 입국한 2022. 7. 28.의 전날인 2022. 7. 27.까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체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위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고 판단, 공소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피고인의 항소이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형량만 줄여 A에게 벌금 12억 5,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세무대리인은 2022. 5. 27.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자료 제출 요구서를 대리 수령하였고, 2022. 6. 7. 문답조사에 응하였으며, 같은 날 위 과태료부과 사전통지를 대리수령하였다"며 "피고인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위 조사 시작 무렵부터 문답조사 실시 및 과태료부과 사전통지 무렵 사이에 피고인의 세무대리인을 통하여 이 사건 위반행위가 문제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조세 및 회계 전문가 등을 통하여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세무조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20억원의 과태료 부과 사유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전문적이고 상세한 자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특히 2022. 6. 15. 피고인의 세무대리인을 통하여 서울지방국세청에 이 사건 해외금융계좌 잔액의 자금 원천을 소명하기까지 하였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도 7월 31일 "원심판단에 공소시효의 정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 A의 상고를 기각했다(2024도8683).
대법원은 종전 대법원 판결(2015도5916 판결)을 인용,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이 정한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는 범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범인이 국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서 체류를 계속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전제하고, "이때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그것이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으로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으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것이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범인의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외 체류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해외에 있다고 전부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고,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해외로 출국하거나 범죄를 인식한 시점 이후에 귀국하지 않는 경우에 공소시효가 정지되고,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여럿 있다"며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서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범죄를 인지하고도 홍콩에 체류하였으므로,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국제조세조정법 34조의2 3항은 "신고의무 위반을 이유로 형사처벌되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 A는 과태료 20억원의 납부의무에선 벗어났다.
법무법인 율촌이 1심부터 A를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