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줄 알고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하게 된 20대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범행 당시 고작 18세였던 데다 아르바이트 외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고, 받은 일당도 13만원 정도로 높지 않은 사정 등을 감안해 보이스피싱에 대한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A는 만 18세이던 2022년 6월 말경 '캔들포장 알바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다음날 사장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연락을 해서 "직원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 당장은 아르바이트 채용을 못하게 됐다"고 하면서, 지인이 대표로 있는 재무설계 회사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새 회사 대표 등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A에게 재무설계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전달받는 업무라고 소개하고, 고객으로부터 받은 돈을 100만원씩 나누어 무통장 입금하라고 지시하면서 의뢰인의 세금 문제 때문에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는 이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이루어진 업무 지시에 따라 현금 수거 업무를 수행, 모두 7차례에 걸쳐 총 1억 450만원을 편취한 보이스피싱 범행에 수거책으로 참여한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A에게 보호관찰, 사회봉사 200시간과 함께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사건 당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각 행위를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이는 범죄조직들은,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취업이 절실한 사회초년생 등의 구직자나 경제사정이 어려워 대출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마치 정상적인 금융회사의 대출 및 금원회수 관련 업무나 대출을 위한 과정의 일부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망하면서 위 사람들을 범행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고,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이나 범행의 도구로 이용되는 사람들 모두 객관적으로 보면 상식에 맞지 않는 범죄자들의 말에 속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며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그 중 금전적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만 피해자로 분류하고, 결과적으로 범행의 도구로 이용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결과가 중대하고 그 경위에 비난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주관적 고의를 쉽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채용과정이 이례적이라거나 자신이 채용 이후 하게 될 업무가 범죄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재무설계 회사의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라고 믿었을 여지가 다분하다"며 "피고인에게 주어지는 일이 불규칙하다는 점,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점, 다액의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업무에는 분실 등의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 2022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1시간당 9,160원이므로 하루 8~9 시간 근무자의 경우 약 8만원 가량의 일당이 최저 수준의 임금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지급받은 대가가 지나치게 높지 않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공소사실과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 즉 사기의 범죄를 인식한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누군가에게 속아서 돈을 건네는 것인지를 인식하여야 하는 것으로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자발적인 의사로 돈을 건넨다고 인식하는 이상 이를 두고 사기 범죄의 가능성을 미필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보이스피싱 범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는 추상적인 사정을 근거로 삼아 피고인에게 보이스피싱 범행에 관한 고의를 쉽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불법적인 행위를 인식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로써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인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실제 일반인이 알고 있는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통하여 수사기관 또는 대출업체 등을 사칭하고 돈을 송금하게 하는 범행 정도라고 보이고, 현금수거책을 보내서 현금을 직접 받게 한 후 다시 이를 전달하거나 소액으로 나누어 무통장입금 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을 접해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기 어려우며, 수거책의 위와 같은 범행행태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도 7월 31일 검사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024도9087).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과 같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사기죄로 기소되는 사안이 매우 많은데, 어떤 경우에는 사기죄의 공동정범이 인정되고, 어떤 경우에는 사기방조죄가 인정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며 "피고인의 행위와 인식의 정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으로 일반적인 기준을 세울 수는 없고, 사건마다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