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대법관 퇴임사 전문
이동원 대법관 퇴임사 전문
  • 기사출고 2024.08.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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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배하는 재판 되지 않게 경계해야"

1. 무더위가 한창인 시기에 여러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퇴임식에 참석하여 주신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들, 그리고 법원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함께 일했던 법관 및 법원 직원 여러분들이 계셔서 부족한 제가 33년이 넘도록 법관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대법관으로 근무한 지난 6년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재판연구관들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이 또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법관으로 일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묵묵히 감당해 준 아내와 아들딸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동원 대법관이 8월 1일 퇴임사를 하고 있다.
◇이동원 대법관이 8월 1일 퇴임사를 하고 있다.

1.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온전히 이루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법은 스스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을 통하여 무엇이 법인지 선언됩니다. 법이 국민에게 행위규범을 제공하고 법원이 이에 따르는 국민을 보호할 때 국민들은 법적안정성을 보장받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법원은 법 자체가 예견하고 있었던 해석이 어떠하였는지를 확인하고 선언해야 합니다. 법적안정성이 유지되어 국민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평화와 사회질서의 확립을 위하여 법원이 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법원이 법해석을 통하여 무엇이 법인지 선언하고 이를 기초로 사회질서가 형성된 후에,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종전에 선언하였던 법의 내용을 그와 달리 말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전 법해석을 믿었던 국민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사회의 법적안정성을 해하게 됩니다.

1. 법관은 재판을 통하여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재판에 임하는 법관은 개인으로서의 법관이 아니라 전체 법원을 대표하는 지위에서 법대로 공정하게 재판하여야 법의 지배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관들마다 판단이 다르다면 법의 지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관은 정치적 압력 등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즉 법관 자신의 개인적 소신으로부터 독립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법관은 자기 속에 있는 법관이 재판하도록 하여야 하고, 자기 속에 있는 자아가 재판하도록 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법관마다 헌법과 법률, 양심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재판의 자리에 서는 사람들은 항상 사람이 지배하는 재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법관은 다른 사람들, 특히 다른 법관들이 생각하고 있는 헌법과 법률, 양심이 어떠한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헌법과 법률,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관한 보편적 견해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보편적 견해를 확인한 다음 이를 따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한 후 자신의 책임 하에 다른 견해를 택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그렇게 재판할 때에 비로소 '양심에 따라' 그리고 '독립하여' 재판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법관들 사이에 법령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될 때 헌법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관들은 그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바른 법해석과 공정한 결론을 이루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특히 관련사건이 있는 경우 관련 재판부 사이에 서로 논의하면서 형평에 어긋난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어느 법원에서, 어느 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게 됩니다.

1. 법원직원은 법관과 함께 이 나라의 사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재판이 성립하는 과정에는 법관 뿐 아니라 법원직원의 헌신과 노력이 더하여집니다. 법원직원은 재판 외에 각종 민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분들과 함께 근무해 보면 뛰어난 직무능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법원직원의 역량에 어울리는 직무와 처우가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사법보좌관의 증원과 직무영역 확장은 법관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판현장에서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1. 제가 대법관으로서 처음 출근하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무실로 들어서면서 입구에 '이동원 대법관실'이라고 쓰인 명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법관으로서 대법관실에 들어가는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법관의 직을 감당하기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나라가 제게 대법관의 소임을 맡겨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낮은 마음으로 그 직무를 감당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조금씩 무뎌질 때마다 집무실 앞에 걸려 있는 명판을 거듭 쳐다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온 대법관으로서의 6년의 시간이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법원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법원을 떠나지만 우리 법원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하여 국민을 평안하게 해 주는 그런 법원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과 가족 모두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 8. 1.

대법관 이 동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