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사랑하는 법관 및 직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6년 전 이 자리에서 긴 마라톤을 앞에 두고 선 기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제 그 길의 끝에 서 있습니다.
실력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눠 주신 동료 대법관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때론 칼날 위의 저울처럼 첨예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형평의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매달 두 차례의 소부합의와 한 차례의 전원합의를 준비하며 연구하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숙고하는 시간은 과분하게 보람 있고 행복하였습니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연구관들과 늘 든든하게 지원해 주신 직원들의 애정과 수고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법의 길 위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법복을 입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이후 35년여의 세월은 법에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한숨이 오롯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 날들이었습니다.
법률 문언의 의미를 파악하고 헌법과 전체 법 질서에 합당한지를 고심하는 한편, 당사자가 나의 편견과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실을 일깨워 줄 스승임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법원이 사법주권을 회복한 후 70여년의 역사에서 역대 148번째 대법관이자 7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다양한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약자의 절절한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들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나 저의 부족함을 절감하기도 하였습니다.
법의 길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사법부는 그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다룹니다.
사법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위한 헌법 정신을 사법부의 모든 업무 수행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법부의 구성 자체에도 다양성의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이 꾸준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성으로서 7번째 운운한 저의 말이 소소한 웃음거리가 되는 날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오기를 소망합니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 대신 즉흥적이고 거친 언사로 비난하는 일 등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법부 독립의 뿌리를 갉아먹고 자칫 사법부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용기를 꺾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증진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법관 및 직원 여러분!
어려운 때이지만 상호존중의 전통을 지키면서 배움에 열린 자세로 서로를 격려하고 화합한다면 사법부의 미래가 굳건할 것임을 믿습니다.
저는 법원을 떠나더라도 법원과 여러분을 잊지 않고 늘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저의 두 딸은 제가 법관의 무게를 견디며 때론 일과 가정의 상충에 고단해할 때 부득이 그 시간들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게 조금이나마 온기와 포용력이 있다면 이는 이들이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들을 비롯한 청년 세대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밝은 희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소중한 인연과 과분한 은혜에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 8. 1.
대법관 노 정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