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은행에 압수수색영장 사본만 팩스로 보내 압수한 계좌 거래내역은 위법수집증거여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A는 2022년 10월 중순과 2023년 1월 27일 두 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마약 판매 광고글을 게시하고(마약류관리법상 향정), 2022년 11월 8일경 A의 필로폰 판매 광고글을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마약류 대금을 자신이 지정한 계좌로 무통장 송금하면 마약류를 보내주겠다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로부터 자신 명의 B은행 계좌로 마약류 대금 명목으로 70만원을 송금 받는 등 2023년 4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합계 430만원을 송금 받아 편취한 혐의(사기) 등으로 기소됐다.
서울북부지법 김선범 판사는 5월 8일 사기 혐의에 대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하고,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의 혐의만 유죄를 인정, A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2023고단2401).
재판에선 사기 혐의와 관련, 경찰이 B은행에 압수수색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압수한 A 명의 계좌 거래내역 등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됐다.
김 판사는 먼저 "수사기관의 압수 · 수색은 법관이 발부한 압수 · 수색영장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 이고, 영장의 원본은 처분을 받는 자에게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므로, 금융계좌추적용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도 수사기관이 금융기관으로부터 금융거래자료를 수신하기에 앞서 금융기관에 영장 원본을 사전에 제시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적법한 집행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다만 수사기관이 금융기관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이라 한다) 제4조 제2항에 따라서 금융거래정보에 대하여 영장 사본을 첨부하여 그 제공을 요구한 결과 금융기관으로부터 회신받은 금융거래자료가 해당 영장의 집행 대상과 범위에 포함되어 있고, 이러한 모사전송 내지 전자적 송수신 방식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요구 및 자료 회신의 전 과정이 해당 금융기관의 자발적 협조의사에 따른 것이며, 그 자료 중 범죄혐의사실과 관련된 금융거래를 선별하는 절차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영장 원본을 제시하고 위와 같이 선별된 금융거래자료에 대한 압수절차가 집행된 경우로서, 그 과정이 금융실명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이루어지고 달리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원칙을 잠탈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하나의 영장에 기하여 적시에 원본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압수·수색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영장의 적법한 집행 방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1도11170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2023. 4. 21. 법원으로부터 1차 영장을 발부받아 2023. 4. 24. 이 부분 증거들을 압수하면서 B은행에 모사전송(FAX) 방식으로 영장 사본을 전송하여 피고인에 대한 금융거래 자료(2023. 3. 1.부터 2023. 4. 20.까지의 피고인 명의 계좌의 거래내역)를 제공받았을 뿐이고, 제공받은 금융거래 자료에 대한 선별절차를 거친 후에도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1차 영장과 관련된 압수수색절차는 적법절차에 반하여 위법하므로, 1차 영장을 통해 수집한 입건전조사보고서(압수수색검증영장 회신 결과), 정보제공총괄현항 등은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데, 법원은 증거로 채택하여 증거조사까지 마쳤으므로, 직권으로 증거배제결정을 한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또 "수사보고서(B은행으로부터 받은 내역 CD 첨부), 금융거래정보제공요구에 대한 회신, CD는 영장 원본의 제시 등 집행 절차상 하자는 없는 3차 영장에 의해 압수한 것이나, 결과적으로 1차 영장 집행 당시 위법하게 압수된 거래내역과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피고인신문을 토대로 압수한 것으로서 1차 영장 집행절차상 위법과 여전히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어 위법수집증거의 2차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수사보고서, 금융거래정보제공요구에 대한 회신, CD에서 출력한 것으로 검사가 추가 증거로 제출한 '계좌 거래내역'은 모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데, 법원은 증거로 채택하여 증거조사까지 마쳤으므로, 직권으로 증거배제결정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이 2023. 5. 10. 20:00경 대전 서구에서 A를 체포하고, 체포영장과 함께 발부받은 압수수색영장(2차 영장)으로 A의 대전 서구 주거지에서 마약류로 추정한 '푸른색 고체'를 압수한 데 이어 A를 도봉경찰서로 인치해 2023. 5. 10. 23:10경 A를 구금한 후 다음 날인 2023. 5. 11. 11:10경 도봉경찰서 형사과 조사실에서 2차 영장을 통해 A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B은행 어플거래내역을 통해 '거래내역'을 촬영하는 방법으로 압수한 것과 관련, 5월 10일 '푸른색 고체'를 압수할 당시 2차 영장의 집행이 종료되었다고 볼 수 없고 다음날 '거래내역'을 압수하고 각 압수조서 및 압수목록이 작성됨으로써 2차 영장의 집행이 종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여 영장의 재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며 "영장의 재집행에 해당하여 위법수집증거"라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사기 혐의에 대해,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므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여기에 ①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증거배제결정을 통해 사용하지 않는 증거를 제외하고는 피고인의 B은행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다는 계좌내역뿐이고, 적요란 기재 등 입금 명목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는 점, ②피고인의 B은행 계좌에는 공소사실에 관한 범죄일람표 기재 내역 외에 비슷한 기간 동안 도박 관련 사례비 등으로 입금된 돈도 다수 존재하고, 그 액수도 비슷하여 입금 명목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범죄일람표 기재 각 돈이 피고인이 마약류를 보내 줄 것처럼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마약류 판매대금을 송금받아 편취한 돈이라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 무죄로 판단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