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하락으로 인한 분양계약의 취소와 해제, 물가변동 분쟁의 본격화 등 건설 관련 분쟁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법무법인 세종이 최근 모두 5차례에 걸쳐 '세종 건설부동산 분쟁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5월 7일부터 6월 4일까지 매주 화요일에 진행된 아카데미에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책임준공의무, 분양계약의 취소 · 해제, 물가변동 분쟁의 최근 동향 등 사례 위주의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다. 리걸타임즈가 건설부동산 분쟁 아카데미에서 다뤄진 주요 이슈를 요약해 소개한다. 이번회 주제는 박재현 변호사가 발표한 물가변동에 따른 관련된 계약금액의 조정과 관련 분쟁에 대한 최근 동향이다. (편집자)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시공사의 공사 원가 부담이 크게 증가하였고, 폭등한 공사비를 둘러싼 분쟁 역시 대폭 증가하였다. 2023년 이후 인건비, 자재비, 경비 등을 종합한 건설공사비지수의 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으나, 그동안 폭등한 공사비를 수급인만 부담해야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어 왔고, 물가폭등기의 손실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분쟁이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PF 시장 경색 등으로 인한 금융비용 상승, 자재비 · 인건비 등 공사비 상승, 미분양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건설업계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왔고, 정부 역시 이러한 투자 위축과 건설경기 둔화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물가 상승분 적정 반영'을 포함한 다양한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공공공사 현장 위주로 물가 상승분의 적정 반영을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다. 2023년에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에 적용되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시행지침」의 개정을 통해 민간참여자가 급격한 물가변동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사업비 증액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 등을 신설하고, 현재 진행 중인 사업장에도 이를 적용하도록 지침을 정비하였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감사원 사전 컨설팅 등을 통한 적극적인 공사비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2024. 3. 28. 비상경제장관회의 등을 통해 물가 상승분이 공사비에 적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건설공사비지수, 건설투자 GDP 디플레이터 등 현실적인 물가 반영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들도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민간공사 현장에서도 2023년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을 통해 물가변동 조정방법의 명확화(품목조정률 또는 지수조정률) 및 조정절차 및 방법 등을 구체화였고, 국토교통부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2024. 1.) 역시 착공 이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물가를 일부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기준을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미 공사비 폭등 기간의 손실이 발생해 버린 현장들이다. 특히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두고 있는 공사 현장의 경우 이러한 특약이 국가계약법 또는 지방계약법상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에 해당하는지(공공계약), 건설산업기본법상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서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민간계약) 여부가 치열하게 다투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언론 지면을 통해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본 부산고등법원 판결(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이 소개되면서 건설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있거나,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경우 계약금액 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물가변동에 따른 손실을 수급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수급인이 모두 떠안을 수는 없고, 그 범위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 역시 부인되어야 한다는 지적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에 대한 기존 선례=물가변동 배제 특약 등이 국가계약법상 부당특약금지 조항에 위배되어 무효인지 여부와 관련하여서는 효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하여 여러 대법원 판결례들이 존재한다.
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특약이 계약상대자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정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인지는 그 특약에 의하여 계약상대자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과정, 관계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단기준을 제시하면서도, "공공계약의 성격, 국가계약법령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내용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국가계약법상 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 등이 사인과의 계약관계를 공정하고 합리적 ·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계약담당자 등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 데에 그칠 뿐이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와의 합의에 기초하여 계약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있는 특수조건 등을 부가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그러한 계약 내용이나 조치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할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하여,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니며 이를 배제하는 특약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무효로 평가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 같은 취지의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4다233480 판결). 그동안 다수의 하급심에서도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쉽게 부인하지 못하였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공사비 폭등 상황을 고려하면, 기존 대법원 판결례에 따르더라도 일정한 경우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지적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대법원은, 공공계약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일정한 경우 유효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그 정도의 물가상승은 원고도 예상하였을 것이므로, 이 사건 특약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였는데(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5다221958 판결,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4다233480 판결), 실제 사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 2015다221958 판결의 사안의 계약 이행기간은, 2008. 12.부터 2012. 4.까지로, 약 3년 반 동안 건설공사비 지수는 누적 10.3%(연평균 3%대) 상승하였고, 대법원 2014다233480 판결 사안의 계약기간은 2009. 11.부터 2012. 12. 20.까지로, 약 3년 동안 건설공사비 지수는 약 11%(연평균 3%대) 상승하였는바, 기존 대법원 판결례는 연평균 3% 수준의 물가상승률은 '예상가능한 수준'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즉, 해당 사안들의 경우, 위와 같은 수준의 물가상승이 있을 것이라는 사정은 당사자가 충분히 예견가능한 것이라는 이유로, 그 정도의 위험은 수급인이 부담하기로 하더라도 불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위 판결례들에 의하더라도, 통상적인 수준(연평균 3% 내외)의 물가상승 위험은 예상 가능한 것으로, 이를 일방 당사자에게 부담시키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은 인정될 여지가 있을 것이나, 통상적인 수준을 현저히 초과하는 물가상승 위험은 당사자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러한 수준의 물가상승 위험을 일방 당사자에게 부담시키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은 부당특약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실제 분쟁 과정에서는 '원자재 가격 폭등'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할 정도로 평가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최근 수년간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 전분야에서 그야말로 '역대급' 물가상승률을 기록하였고, 특히 연간 건설공사비 지수 상승률을 추이를 보면 2021년 14%, 2022년 7%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물가폭등 기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거나, 공사의 착공이 지연되었던 현장에서 당사자 사이의 합의가 안 될 경우 소송 또는 중재를 통한 해결을 시도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련 분쟁의 향후 전망=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경우 사업에 참여하는 어느 당사자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해당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변칙적 · 불가항력적 요인에 따른 물가상승분 마저도 사업비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이는 계약의 일방에 대하여 부당한 불이익을 부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물가의 변동으로 계약이행을 포기하거나 그 내용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여 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초래될 위험도 존재한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기본적으로 유효하다'고만 생각하던 업계의 인식이 이미 바뀌었다는 점은 분명하고, 이미 제기되었던 관련 사건들의 하급심 선고 결과도 하나둘씩 나올 때가 되다 보니 건설업계의 관심도는 더욱 올라간 상황이다.
특히 민간현장의 경우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는데,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서 (1)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 (2)도급계약의 형태, 건설공사의 내용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계약체결 당시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 등에 해당할 경우에는 그 부분에 한정하여 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 제3호).
최근 언론에 소개된 부산고등법원 판결 사례의 경우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 해당 사례의 경우 발주자가 도급계약 해제 후 선급금 반환을 청구한 사안으로,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대금 청구 사건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고, 수급인의 귀책사유 없이 발주자의 사정으로 착공 연기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대폭 인상되었다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판결이나, 해당 판결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해야 한다고 본 논거들은 향후 관련 분쟁에서도 충분히 참고가 될 만하다.
위 부산고등법원 판결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해야 한다고 본 근거는 크게 2가지이다.
우선 건설산업기본법의 강행규정성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이 일정한 경우 도급금액 증액 금지 약정을 무효로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현저히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증액, 변경을 부정하는 취지의 특약'은 강행규정인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반하는 범위에서 무효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착공지연 등 발주자의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수급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해당 사안의 경우 발주자의 귀책사유로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추어지는 사이에 원자재인 철근 가격이 2배 가량 상승하였는데, 수급인의 귀책사유 없이 원고측 사정으로 착공이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원자재 가격의 대폭적인 인상을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이러한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은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함으로써 수급인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 부산고등법원 판결 사례 이외에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 사건에서 설비구매계약 중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부인하고, 시공사가 청구한 추가 계약금액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라고 판정한 사례가 언론에 소개되는 등 물가급등기의 현실을 반영한 분쟁 사례들의 결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각 현장별로, 계약상대자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과정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부당특약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것이고, 물가급등기의 특수한 상황 및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고려한 판결들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재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jhyeonpark@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