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유령법인 명의 은행계좌 602개 개설했어도 업무방해죄 무죄"
[금융] "유령법인 명의 은행계좌 602개 개설했어도 업무방해죄 무죄"
  • 기사출고 2024.04.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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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업무담당자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업무방해 위험성 없어"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하면서 계좌개설신청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했더라도 은행 담당자들이 자격요건과 사실확인 등을 충분히 심사하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업무방해죄가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는 공범들과 함께 2019년 11월 7일경 명의대여자인 B를 유령법인인 C사의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법인 변경등기를 마치고, 1주일 후인 11월 14일경 대구 달서구에 있는 KB국민은행 이곡동 지점에서 마치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인 것처럼 위 회사의 사업자등록증, 인감증명서, 신분증 등 계좌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은행 담당직원에게 제출해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 것을 비롯하여 2022년 5월까지 35개 유령법인 명의의 은행계좌 602개를 개설, 은행들의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는 이 602개 계좌의 통장 등 접근매체를 대포통장 유통책에게 전달했고, 대포통장 유통책은 위 통장 등을 온라인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보이스피싱 조직 등 범죄단체와 조직에 대가를 받고 유통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업무방해 유죄를 인정했다.A의 상고로 열린 상고심(2024도10)에서 대법원 제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그러나 3월 28일 계좌개설신청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행위가 은행에 대하여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되지 않는다고 직권 판단,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 등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신청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자격요건 등을 심사 · 판단하는 것이므로, 업무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아니한 채 신청인이 제출한 허위 신청사유나 허위 소명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하였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도2537 판결 등 참조)"고 전제하고, "따라서 계좌개설 신청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 매체의 양도의사 유무 등에 관한 사실을 허위로 기재하였으나,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의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계좌개설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판결 참조)"고 밝혔다.

이어 "원심이 채택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 등이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피해 금융기관들이 미리 마련한 양식인 거래신청서 등에 어떠한 내용의 기재를 하였는지, 피해 금융기관들의 업무담당자가 피고인 등에게 금융거래 목적 등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였거나 이를 확인하였는지, 피고인 등이 그에 관하여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문서를 위조하여 제출함으로써 업무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는지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경우에 원심으로서는 피해 금융기관들의 업무담당자가 피고인 등에게 금융거래 목적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심사절차를 진행하였음에도 피고인 등이 그에 관하여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문서를 위조하여 제출함으로써 업무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관하여 필요한 심리를 하였어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