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범이 피해자의 은행계좌를 원격조종해 다른 사람 계좌로 송금해 카드대금이 자동결제된 사건과 관련, 대법원이 해당 카드 소유자가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A는 2021년 10월 자녀를 사칭한 피싱범으로부터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수리비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고는 피싱범이 안내하는 대로 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피싱범은 A의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정보를 얻어낸 뒤 A의 휴대전화에 원격조정 프로그램을 설치하고는 A 명의 계좌에서 B에게 부여된 신한카드 명의의 농협은행 가상계좌로 100만원을 이체했다. 이 100만원은 신한카드의 카드대금으로 자동결제되었다.
뒤늦게 피해사실을 알게 된 A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신한카드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금원이 A의 피해금이라는 사실에 대해 카드사에게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는 피싱범으로부터 송금을 받은 B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B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공시송달로 진행된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B 계좌에 송금된 돈을 B가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B가 모르는 사이에 입금된 돈이 카드대금으로 자동결제되었으므로 부당이득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공단 측은 "B는 자신이 사용한 카드대금 100만원의 채무를 면제받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도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A의 상고로 열린 상고심(2023다308911)에서,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3월 28일 B가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먼저 "부당이득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이익'을 얻은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고 전제하고, "채무를 면하는 경우와 같이 어떠한 사실의 발생으로 당연히 발생하였을 손실을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재산의 소극적 증가도 이익에 해당한다(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6두60287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자신의 신용카드대금 채무이행과 관련하여 신한카드 명의의 가상계좌로 송금된 원고의 돈으로 법률상 원인 없이 위 채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었으므로 원고에게 그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