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의 표준약관 조항에 대해 무효 판단이 내려졌는데, 판결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표준약관을 사용하는 증권사 등의 관련 약관의 개정, 제도 개선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최근 선고된 파생상품 투자 관련 판결 중 금투협 표준약관의 '반대매매 허용' 조항이 무효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빼놓을 수 없다. KB증권에 계좌를 개설하고, 오사카 증권거래소의 니케이(Nikkei) 225 지수 풋옵션에 투자했다가 마진콜 즉, 증거금 추가예탁 통보 없이 전량 반대매매로 강제청산을 당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본 위너스자산운용을 대리해 항소심에서 승소한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김광중 변호사는 약관의 개정과 함께 "증권사 등의 업무처리 시스템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는 말로 이번 판결의 간단치 않은 파장을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고법 판결 이후 이미 몇몇 증권사의 준법감시팀에서 파생상품 거래 등의 시스템 점검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수금 청구에 손배소 반소
분쟁의 발단은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2월 니케이 풋옵션의 기초자산인 니케이 지수가 급격히 하락하자 KB증권이 마진콜 없이 위너스자산운용 측의 계좌에 들어 있는 니케이 풋옵션 전부에 대해 반대매매를 실행하면서 비롯되었다. KB증권은 반대매매를 실행하면서 지급한 결제대금과 예탁금의 차액인 미수금 15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위너스자산운용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위너스자산운용 측은 위법한 반대매매로 계좌에 보유하고 있었던 예탁금 전부를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KB증권을 상대로 예탁금 합계 244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반소로 맞섰다.
1심에선 KB증권이 이겼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지난해 1월 "KB증권의 반대매매가 (금융투자협회가 제정한) 해외 파생상품시장거래 총괄계좌 설정약관 제14조 제2항에 의한 것으로 적법하고, 위 약관 조항이 무효이거나 피고 위너스자산운용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며 위너스자산운용 등에게 미수금 지급 책임이 있고, KB증권은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위너스자산운용 측을 대리한 클라스한결의 김광중 변호사 팀은 즉각 항소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선물, 유럽형옵션, 미국형옵션 등 해외장내파생상품이 그 상품 유형별로 손익구조와 위험이 다르므로 투자중개업자는 상품 유형을 고려해 증거금으로 위험관리를 해야 하는데, KB증권의 약관은 상품별 위험요인을 구분하지 않고 일정한 평가손실이 발생하면 상품 구분 없이 모두 반대매매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며 KB증권 약관의 불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 "KB증권의 반대매매는 유럽형옵션의 특성을 무시하고 부당하게 취급한 것으로 위법하고,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업자의 의무도 위반한 것"이라 주장하고, 손익구조와 위험성이 전혀 다른 파생상품에 대해 모두 동일한 약관을 적용해 동일하게 취급하는 국내 증권회사들의 업무 위험성에 대해서도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김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KB증권은 67종의 해외파생상품 모두에 단 하나의 동일한 약관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6일 선고된 항소심 판결 결과는 1심 판결과는 정반대인 위너스자산운용의 승소였다.
KB증권 책임 30% 인정
서울고법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KB증권의 책임을 30% 인정해 "KB증권이 위너스자산운용 측에 손해배상으로 모두 74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반대매매는 적법한 법률적 근거 없이 실행되었거나, 원고는 해외 파생상품시장거래 총괄계좌 설정약관 제14조 제2항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반대매매를 실행하였고,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원고는 자본시장법상 신의성실의무,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자본시장법 제64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KB증권의 미수금 등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다만, 원고(KB증권)는 피고 위너스자산운용과 체결한 약관 제14조 제2항에 기초하여 반대매매를 실행한 점, 이 약관은 금융투자협회가 제정한 것으로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거쳤으므로 원고로서는 이를 신뢰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각 계좌의 위험도의 측정은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는바 니케이 풋옵션의 가격이 단기간에 상승함으로써 원고로서도 이와 같은 사태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에게도 반대매매로 인하여 도이치뱅크 런던지점에 예탁금으로도 충당되지 않은 결제대금을 추가로 지급함에 따라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점 등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KB증권의 책임을 위너스자산운용이 입은 손해의 30%로 제한했다.
김광중 변호사는 "기존 판결들과 달리 금투협 표준약관과 그에 근거한 반대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함으로써 국내 증권회사들의 잘못된 업무관행을 바로잡은 판결"이라며 "유사 피해자의 발생을 막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항소심 판결을 환영했다. 그러나 KB증권의 책임을 30%만 인정한 책임제한 판단과 관련해선, "비율도 비율이지만 이 사건은 아예 책임제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라며 상고심에서 이 부분에 변론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이어 금융소송 활약
변호사 경력 약 20년의 김광중 변호사는 금융투자자를 대리해 분식회계나 주가조작으로 인한 피해자 손배소를 많이 다루는 집단소송 전문가로 유명하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와 관련,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17곳을 대리한 소송에서도 전부 승소했다. 얼마전부터 이번 니케이 풋옵션 사건 등 파생금융상품 관련 금융소송 등으로 영역을 넓혀 활약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