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법률에서 정한 방식, 즉 취업규칙에 의하여만 도입할 수 있고,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로는 도입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법정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소정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4월 27일 근로자들에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근로기준법 위반), 여성 근로자에게만 정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인천국제공항 내 항공기 기내청소 용역업체 대표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6431)에서 이같이 판시, 근로계약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 · 시행되었다고 보아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혐의도 유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4월경부터 2015년 12월경까지 퇴직자 포함 근로자 135명에게 연장근로수당 약 5,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또 2014년 4월경부터 2017년 10월경까지 같은 여객기 청소업무에 종사하는 남성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정근수당을 여성 근로자 124명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아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혐의는 무죄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으로 형을 낮췄다. 항소심 재판부는 회사와 근로자들이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탄력적 근로에 관한 근로조건이 공통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를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으로 볼 수 있으므로 사업장에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 · 시행되었다고 보이고, 설령 근로계약서의 형식과 내용이 미흡하여 탄력적 근로시간제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근로계약서를 통하여 장기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해 왔고,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에 관한 근로자들의 이의제기나 노사 간 의견대립 등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과 제2항에서 정한 1주간 및 1일의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소정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서 법률에 규정된 일정한 요건과 범위 내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이므로 법률에서 정한 방식, 즉 취업규칙에 의하여만 도입이 가능할 뿐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를 통하여 도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그러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94조 1항 단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 당시 시행되던 구 근로기준법(2017. 11. 28. 법률 제151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1조 제1항은 사용자는 취업규칙(취업규칙에 준하는 것을 포함한다)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2주 이내의 일정한 기간을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어 "근로계약서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이나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로 이를 도입할 수 없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게다가 사업장에는 취업규칙이 별도로 존재하였으므로 근로계약서가 실질적으로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며 "따라서 사업장에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하여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단위기간 등이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피고인 회사의 근로계약서는 그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정한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의 회사가 수행하는 항공기 기내 청소 용역업은 탄력적인 인력 활용이 요청될 수 있는 업종이고, 사업장 및 회사의 규모에 비추어 피고인은 유효하게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유효하게 도입 및 시행되었으므로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다툴 만한 근거가 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설령 근로자들이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것에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혐의는 유죄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