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근로자에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관련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폐기
[노동] 근로자에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관련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폐기
  • 기사출고 2023.05.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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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판결, "집단적 동의권 남용 아닌 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 없으면 무효"

종전 판결(2015. 8. 13. 선고 2012다43522 판결 등)에서,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작성 · 변경이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하여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하는 내용일 때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하여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해당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여 왔다. 그러나 대법원이 5월 11일 전원합의체 판결(2017다35588, 2017다35595 · 주심 오경미 대법관)에서 종전 판례를 변경,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의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도 유효로 판단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취업규칙 변경에서 '근로자 동의', 노사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판결이다.

'근로자 동의', 노사합의의 중요성 강조한 판결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하여 근로자가 가지는 집단적 동의권은 사용자의 일방적 취업규칙의 변경 권한에 한계를 설정하고 헌법 제32조 제3항의 취지와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차적 권리로서, 변경되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종전 판례의 해석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일정한 경우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으로 기존 근로조건을 낮추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 규정에 반하는 해석일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예정한 범위를 넘어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의 일방적인 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헌법 정신과 근로자의 권익 보장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근본 취지,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어서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는지 노동관계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별 사건에서 다툼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인정 여부의 기준으로 대법원이 제시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원의 판단 역시 사후적 평가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이에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그 유효성이 확정되지 않은 취업규칙의 적용에 따른 법적 불안정성이 사용자나 근로자에게 끼치는 폐해 역시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그동안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판단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정립하여 왔으며, 이를 임금이나 퇴직금 등 근로조건에 관련된 영역보다는 주로 인사규정이나 복무규율에 관한 영역에서 엄격한 해석 하에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왔다.

"근로조건 조정, 사용자의 설득,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의 작성 · 변경 권한을 인정하고 있고, 나아가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 시에도 그 적용을 받는 모든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아니라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근로자 다수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근로조건의 유연한 변경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근로조건의 유연한 조정은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함으로써가 아니라, 단체교섭이나 근로자의 이해를 구하는 사용자의 설득과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의 유효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행사할 때도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따라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입법 취지와 절차적 권리로서 동의권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또 "신의성실 또는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적용은 강행규정에 관한 것으로서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법원이 그 위반 여부를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으므로,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도 법원은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사건에서의 판단=이 사건은 현대자동차의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 16명이 회사 측이 2004년 7월 1일 일반직 과장 이상, 연구직 선임연구원 이상, 생산직 기장 이상의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하여 시행하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이 무효라며 2011년부터의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의 지급을 청구한 소송이다. 현대차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에서 전체 직원에게 적용되어 온 종전 취업규칙과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부여하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총 인정일수에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했다. 그러나 간부사원 취업규칙 제정과 관련해 전체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나 취업규칙 적용 대상인 간부사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효로 판단했다.

특히 근로자 과반수 동의와 관련, "피고의 일반직 · 연구직 · 생산직 등의 직원들은 누구나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고, 승진한 직원들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에 따라 월차유급휴가를 지급받지 못하며 연차휴가일수를 25일로 제한받게 되는데, 이처럼 여러 근로자 집단이 하나의 근로조건 체계 내에 있어 비록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시점에는 어느 근로자 집단만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더라도 다른 근로자 집단에게도 변경된 취업규칙의 적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일부 근로자 집단은 물론 장래 변경된 취업규칙 규정의 적용이 예상되는 근로자 집단을 포함한 근로자 집단이 동의주체가 되는 것"이라며 현대차가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는 일반직 · 연구직 · 생산직 등의 직원들을 포함한 근로자 집단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현대차는 지역본부별, 부서별로 간부사원들을 모아 전체 간부사원 6,683명 중 89%에 해당하는 5,958명의 동의서를 징구했다며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만, 청구원인을 연월차수당 지급으로 한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가 법원에 제출된 2016년 9월 7일부터 역산하여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되는 2013년 9월 7일 이전의 연월차휴가수당청구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와 현대차가 함께 상고해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하고 다만,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해 간부사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과 관련해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 여부를 따져 결론을 내라고 파기환송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종전 판례의 태도에 따라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를 바탕으로 그 효력을 판단하였을 뿐, 그것이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며 "원심으로서는 피고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에 해당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나아가 심리 · 판단하였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이현이 원고들을, 현대차는 법무법인 지평이 상고심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