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제사주재자, 장남 아닌 나이 순"
[가사] "제사주재자, 장남 아닌 나이 순"
  • 기사출고 2023.05.1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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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 변경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 민법상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맡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장남에게 우선권을 주었던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판결)을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5월 11일 숨진 A씨의 부인과 장녀(29), 차녀(23)가 "파주시에 있는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안치된 A씨의 유해를 인도하라"며 장남을 낳은 A씨의 내연녀 B씨와 이 추모공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248626)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부인과 혼인관계에 있던 중 2006년 11월경 B씨와 사이에 장남(17)을 두었다. A씨가 2017년 4월 사망하자 B씨는 A씨의 유체를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봉안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A씨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B씨는 장남의 법정대리인으로서 그 유해를 점유 · 관리하고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피상속인의 유체 · 유해를 민법 1008조의3 소정의 제사용 재산에 준해서 보아 제사주재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하면서,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 또는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제1항,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현재의 법질서, 국민들의 변화된 의식 및 정서와 생활양식 등을 고려하면,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거나 그 지위를 우선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판시하고, "이와 달리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주재자 결정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본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또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최근친의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는,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장기간의 외국 거주,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조상의 분묘에 대한 수호 · 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또는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의 명시적 · 추정적 의사, 공동상속인들 다수의 의사, 피상속인과의 생전 생활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새로운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의 신뢰 보호를 위하여 이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다. 다만, 새로운 법리 선언은 이 사건의 재판규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므로 이 사건에는 새로운 법리를 소급하여 적용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 "원심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A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되 다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하여 누가 A에 대한 제사주재자인지를 판단하였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A의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A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아 자녀들 중 연장자인 장녀를 비롯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제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에는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