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무인주차장 600곳 전화응대' 50대 콜센터 女상담원 뇌출혈…산재
[노동] '무인주차장 600곳 전화응대' 50대 콜센터 女상담원 뇌출혈…산재
  • 기사출고 2023.04.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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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주 52시간 초과 안했지만 업무 과중"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월 13일 전국 약 600개의 무인주차장 이용자들을 상대로 전화 문의 응대 업무를 하다가 뇌출혈 진단을 받은 콜센터 상담원 A(사고 당시 만 52세 · 여)씨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두47391)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최문환 변호사가 1심부터 A씨를 대리했다.

A씨는 콜센터시스템 운영 대행회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2018년 2월 7일부터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건물 4층에 있는 통합관제센터(콜센터)에 파견되어 전국 약 600개 가맹업체의 무인주차장의 이용과 관련해 무인주차 정산기 사용방법 안내, 주차요금 정산안내, 무인주차 A/S 접수 진행 등에 관한 이용자들의 전화 문의에 응대하는 상담 업무를 했다. 3교대 중 고정 석간조에 속한 A씨는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근무했으며, 저녁 식사시간 1시간 외에는 휴게시간이 없었고, 휴게장소도 마련되지 않았다.

A씨는 2018년 9월 15일 오후 5시쯤 콜센터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오른쪽 반신마비, 실어증 증세를 보이면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어 '뇌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자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먼저 "원고가 담당한 '콜센터 상담 업무'는 민원인으로부터 심한 항의와 욕설을 듣기도 하는 민원상담 또는 민원처리 업무로서 업무량을 떠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업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위험성이 있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참조)"고 지적하고, "이와 같은 대면업무의 특성상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담당 업체를 대신하여 다수의 무인주차장 이용자들과의 갈등 상황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상태에서 민원인과의 다양한 분쟁을 지속적으로 처리하여야 했고, 업무처리 결과에 따라 자신은 물론 이 사건 사업장 또는 담당 업체에도 불이익 등이 초래될 가능성까지 있었으므로, 근로시간 내에 계속하여 정신적 긴장이 큰 상태에서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까지 침해할 우려는 물론 다양한 요인과 결합하여 직무스트레스로 인하여 뇌혈관계질환 등의 신체적 장해까지 발생할 가능성까지 높아졌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원고는 종전 사업장에서 업체 측의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전화를 걸어 신용카드 교체 안내를 주된 업무로 한 것에 비하여 이 사건 사업장에서는 무인주차장 이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걸려온 전화를 받아 이용자의 불만 · 불편사항을 해결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였다. 대법원은 "이는 원고가 담당한 상담 업무의 방식 · 성격 및 내용에 있어 사업장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고, 특히 종전 사업장이 1개 업체의 업무를 주로 담당한 반면 이 사업장은 전국에 있는 약 600개의 가맹업체의 무인주차장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다는 점을 보더라도, 종전 사업장에 비해 이 사업장에서 담당한 업무로 인한 직무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더욱이 사업장의 3교대 근무 중 원고가 담당한 '석간조'는 주간조 · 야간조에 비해 업무 부담이 높았고, 사업장의 악성 민원과 관련한 민원응대 매뉴얼은 실질적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사정에다가 원고의 근로시간, 주거지와의 이동거리 · 통근 소요시간, 연령 · 성별 및 가족관계에 따른 역할에 비추어 원고의 실질적인 수면시간은 최대 6시간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더하여 보면, 원고의 근무 강도와 이로 인한 육체적 ·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비록 원고의 근로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더라도 원고는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장기간 담당함으로써 '현행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종사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고, 이로 인하여 높은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상당 기간 동안 노출됨에 따라 뇌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 · 정신적 부담이 발생하여 뇌기저핵출혈(이 사건 상병)의 발병 또는 악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단된다"며 "원고가 종전 사업장에서부터 이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콜센터 상담 업무를 담당하던 중 고혈압 증상이 생긴 상태에서 이 사건 상병까지 발병하였는바, 비록 상병의 주된 발생 원인을 '고혈압'으로 보더라도, 원고의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상병의 주된 발생원인인 '고혈압'과 겹쳐서 상병을 유발하였거나 촉진 ·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