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이 업무정지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던 중 처분이 과징금으로 변경됐다면 기존 소송을 취하했어도 바뀐 과징금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다시 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월 16일 성남시 중원구에서 병원을 공동으로 개설 · 운영하는 의사 2명이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의 상고심(2022두58599)에서 이같이 판시, 소 각하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모두의법률이 원고들을 대리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원고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약사가 미리 조제한 약을 비치하고 간호사가 약을 추가 조제한 후 환자에게 투여하여 약사법을 위반했음에도 그 약제비 등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함으로써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 등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했다는 이유로, 2018년 6월 원고들에게 4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하자, 원고들이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위 업무정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서울행정법원이 2019년 12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 원고들이 이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항소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위 항소심 계속 중인 2020년 1월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 496,574,000원의 부과처분으로 직권 변경했다. 그러자 원고들은 대전지법에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내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업무정지 취소소송은 2021년 11월 취하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원고들의 소 취하에 동의해 업무정지 취소소송은 종결되었다.
과징금 소송의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원고들의 항소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소송 자체가 재소금지 원칙에 위반되어 적법하지 않다고 보고 각하 판결했다. 민사소송법 267조 2항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한 사람은 같은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과징금 소송이 재소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먼저 민사소송법 267조 2항과 관련, "이는 임의의 소취하로 그때까지 국가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아가게 한 사람에 대한 제재의 취지에서 그가 다시 동일한 분쟁을 문제 삼아 소송제도를 남용하는 부당한 사태의 발생을 방지하고자 하는 규정"이라고 전제하고, "따라서 후소가 전소의 소송물을 전제로 하거나 선결적 법률관계에 해당하는 것일 때에는 비록 소송물은 다르지만 위 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전소와 '같은 소'로 보아 판결을 구할 수 없다고 풀이함이 상당하나, 여기에서 '같은 소'는 반드시 기판력의 범위나 중복제소금지의 경우와 같이 풀이할 것은 아니므로, 재소의 이익이 다른 경우에는 '같은 소'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과 관련, "전소는 처분의 변경으로 인해 그 효력이 소멸한 '업무정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고, 이 사건 소는 후행처분인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므로 전소와 이 사건 소의 소송물이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다음으로 전소의 소송물인 '업무정지 처분의 위법성'이 과징금 부과처분의 위법성을 소송물로 하는 이 사건 소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선결적 법률관계 또는 전제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업무정지 처분과 과징금 부과처분의 기초가 되는 위반행위는 동일하지만 처분의 근거법령이나 요건과 효과는 동일하지 않고, 업무정지 처분은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에 근거한 것이고, 과징금 부과처분은 같은 법 제99조에 근거한 것으로 그 처분기준이나 재량권 일탈 · 남용 여부에 대한 고려사항이 같지 않다"며 "업무정지 처분이 적법하더라도 과징금 부과처분은 위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국민건강보험법 99조 1항에 따르면,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하여 부과되는 과징금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부담하게 한 금액의 5배 이하의 금액'만 부과될 수 있으므로, 업무정지 처분에는 위법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갈음하여 부과된 과징금의 액수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부담하게 한 금액의 5배'를 초과함으로써 과징금 부과처분이 위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업무정지 처분이 위법하더라도 과징금 부과처분은 적법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예컨대, 업무정지 처분이 지나치게 과중하여 재량권을 일탈 ·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도, 그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은 재량범위 내에 있어 적법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고들에게 업무정지 처분과는 별도로 과징금 부과처분의 위법성을 소송절차를 통하여 다툴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원고들이 선행판결 선고 이후 전소를 취하하고, 이 사건 소를 다시 제기하게 된 경위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이 전소의 소송절차를 통한 국가나 법원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아가게 한다거나 소송제도를 남용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