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29년간 화재진압하다가 파킨슨병 걸린 소방관…국가유공자 판결
[행정] 29년간 화재진압하다가 파킨슨병 걸린 소방관…국가유공자 판결
  • 기사출고 2023.03.23 09: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지법] "일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

약 29년간 화재진압 업무를 수행하다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소방관이 소송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울산지법 행정1부(재판장 이수영 부장판사)는 2월 2일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2022년 1월 퇴직한 전 소방관 A씨가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며 울산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2022구합6189)에서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결정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1990년도부터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중 2017년부터 신체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 증상이 발생했고, 2018년 7월 '파킨슨증후군, 다발계통위축' 진단을 받았다. A씨는 2021년 8월 울산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울산보훈지청이 '이 상병은 국가의 수호 · 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려우나, 상병의 발생 또는 악화가 직무수행 등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A씨가 보훈보상대상자(재해부상군경) 요건에는 해당하나 국가유공자(공상 군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자 소송을 냈다. A씨는 상병 발병 전까지 약 29년간 근무기간의 대부분을 화재진압 또는 화재조사를 위해 화재현장에 출동해 업무를 수행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2015두46994 등)을 인용,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인정하기 위하여는 단순히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사망 또는 상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망 또는 상이가 국가의 수호 ·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사망 또는 상이에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이 일부 영향을 미쳤더라도 그것이 주로 본인의 체질적 소인이나 생활습관에 기인한 경우 또는 기존의 질병이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으로 인하여 일부 악화된 것에 불과한 경우 등과 같이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이 그 사망이나 상이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유공자법령에서 정한 국가유공자 요건의 인정 범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수행한 직무는 ①국민의 생명 ·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로서, ②소방공무원으로서 화재진압, 인명구조 및 구급 업무, 화재 · 재난 · 재해로 인한 피해복구, 화학물질 ·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 취급, 119에 접수된 생활안전 및 위험제거 행위(화재 · 재난 · 재해 또는 위험 · 위급한 상황에서의 생활안전 지원에 해당되는 경우를 말한다)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로 평가되며(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6호,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별표 1] 제2호의 2-1호 다목), ③원고는 화학물질 · 발암물질 · 감염병 등 유해물질을 취급하거나 이에 준하는 유해환경에서의 직무수행(이와 관련된 교육훈련을 포함한다) 중 이들 유해물질 또는 유해환경에 상당한 기간 직접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생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질병에 걸린 사람(위 [별표 1] 제2호의 2-8호 라목)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원고는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6호의 공상군경 대상자 요건에 해당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화재현장에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거나 조사하는 직무수행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었고, 원고가 위와 같은 직무수행 현장 이외에서 유해물질이나 유해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는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원고에게 '다발계통위축'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기존 질병이 있었다거나, 이러한 상병을 초래할 수 있는 유전적 · 체질적인 소인이나 생활습관이 있다는 자료 또한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화재현장에서는 화재로 인하여 고열과 화학물질,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발생하며, 소방관들이 공기호흡기, 보호복 등 각종 보호장구를 착용하더라도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원고가 화재진압 및 조사 업무를 담당하던 기간 중 상당 기간 보호장구 보급률이 매우 낮고, 그 성능 또한 좋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원고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장기간 위 업무를 수행하면서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물질과 고열에 장기간에 걸쳐 직접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다발계통위축증과 같이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질병의 경우에도, 소방관이 화재진압 등 직무수행 현장에서 유해물질 등에 대한 장기간 노출된 것이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다발계통위축증 관련 소방관들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위한 선례적 기준을 제시한 것은 물론, 국가유공자 인정에 확정적인 과학적 · 의학적 인과관계를 요구하여 신청자에게 지나친 증명의 부담을 전가해 왔던 기존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은 공익활동으로 이 소송을 수행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