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공정위 과징금 납부 피하려 조합 청산…국가에 손해배상책임 인정
[손배] 공정위 과징금 납부 피하려 조합 청산…국가에 손해배상책임 인정
  • 기사출고 2023.03.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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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불법행위 해당"

조합 이사장이 공정위 과징금 납부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서둘러 조합의 청산절차를 마쳤다가 국가에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이백규 판사는 2월 22일 국가가 "징수하지 못한 과징금 3,2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A조합 이사장인 B씨를 상대로 낸 소송(2022가단5093918)에서 "B씨는 국가에 2,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조합은 학교급식재료를 납품하는 사업자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근거하여 설립한 단체로, B씨는 2018년 9월 A조합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 1월 A조합이 부당한 경쟁제한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4,000만원을 부과하자, 이에 불복해 A조합이 행정소송을 제기, 서울고법이 2019년 6월 13일 A조합의 행위가 부당한 경쟁제한행위에 해당하여 과징금 부과 자체는 적법하나 과징금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1차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같은해 10월 18일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을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공정위 담당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 다음날인 10월 2일 B씨와 통화하면서 1차 처분에 기한 과징금 4,000만원을 환급하고 다시 과징금을 산정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환급계좌 신청을 받아 과징금 4,000만원을 환급해주었다.

A조합은 그러나 2019년 12월 20일 총회를 열어 조합의 해산과 B씨를 청산인으로 선임하는 결의를 하고 2020년 1월 해산등기를 마쳤다. 이어 2020년 2월 4일 일간신문에 해산결의 사실과 조합채권자는 공고일로부터 2개월 내에 신고하라는 내용을 공고하고, 2020년 3월 13일 다시 총회를 열어 조합의 채무를 변제하고 잔여재산이 있을 때에는 출자금 비율에 의하여 조합원에게 분배한다는 결의를 했다. 공정위는 관련 소송 판결에 따라 과징금을 다시 산정해 3월 26일 A조합에 과징금 3,200만원을 다시 부과했으나, A조합은 과징금 부과처분 고지서를 받은 직후 각종 비용을 지출한 뒤 남은 돈 2,100여만원을 조합원 21명에게 100만원씩 잔여재산분배로 지급하고 나머지 194,912원은 국가에 가수금으로 지급하여 조합계좌의 잔고가 0원이 되게 했다. 이에 국가가 "A조합은 2차 과징금 처분에 기한 과징금 납부의무를 회피하고자 서둘러 해산결의를 하고 청산절차에 나아갔는바, B씨는 청산인으로서 채권 신고 공고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고 채권 신고 기간 내에 채권자에 대한 변제를 했다"며 소송을 냈다. 공정위는 2020년 4월 2일 A조합에 과징금 32,000,000원에 관한 채권신고서를 제출했으며, A조합은 2020. 4. 14. 총회를 개최하여 청산결산보고서를 승인하는 결의를 하고 2020. 5. 4. 청산등기를 마쳤다.

A조합은 비영리법인으로서 그 해산과 청산에 관하여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의 규정 외 민법의 규정이 적용되는데, 민법은 청산인으로 하여금 취임한 날로부터 2월 내에 3회 이상의 공고로 채권자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내에 그 채권을 신고할 것을 최고하여야 하고 그 기간은 2월 이상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88조). 또 청산인은 채권신고기간 내에는 채권자에 대하여 변제하지 못하도록 규정(90조)하면서 이 규정들에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규정(97조)하고 있다.

이 판사는 "피고는 2018. 9. 28. A조합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2019. 6. 13. 및 2019. 10. 18. 선고된 관련 소송 판결의 내용, 곧 공정거래위원회의 1차 처분에 기한 과징금 부과 자체는 적법하나 과징금의 액수 산정이 잘못되어 다시 산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의 행위는 민법 제750조가 규정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A조합은 위와 같은 인식 아래 2012. 3. 조합설립 이래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음에도 2020. 12. 20. 조합총회를 개최하여 해산을 결의하고 서둘러 청산절차를 밟게 되었다"며 "피고는 위 결의를 통해 청산인으로 선임되어 직무를 수행하면서 채권신고 공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여 3회 이상 공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조합은 2020. 2. 4. 그 날로부터 2개월 내에 채권을 신고하도록 공고했으나, 2020. 4. 4.이 되기 전에 채권자에 대한 변제를 계속하였고, 2020. 3. 18. 공정위에 2차 처분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잔고가 0원이라고 하였으나, 당시 잔고는 30,295,378원이었다.

B씨는 채권자에 대한 변제가 금지될 뿐 조합원에게 분배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판사는 그러나 "채권자에 대한 변제가 금지되는 이상 채권자에 대한 변제를 모두 마치고 진행하게 되는 조합원에 대한 잔여재산분배를 채권신고 기간 내에 하여서는 안 된다는 점은 더 없이 분명하다"며 "A조합의 2020. 3. 13. 총회결의 내용도 조합의 채무를 변제하고 잔여재산이 있는 경우 비로소 조합원에게 분배한다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사는 "원고는 A조합이 채권신고 공고를 한 날 현재의 재산(31,950,017원)에 대하여 원고의 과징금 채권이 전체 조합채권자의 채권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손해배상액을 2,3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고세경, 박소은 변호사가 국가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