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한날 다수 공익법인에 주식 출연…선후관계 따져 합산 대상 정해야"
[조세] "한날 다수 공익법인에 주식 출연…선후관계 따져 합산 대상 정해야"
  • 기사출고 2023.04.0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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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출연자가 고려한 '비과세' 순서 무시 안 돼"

구 상증세법 48조 1항은 "공익법인등이 출연받은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다만, 공익법인 등이 내국법인의 주식을 출연받은 경우로서 그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초과하는 가액을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날 다수의 공익법인 등에 주식을 출연한 경우 과세대상 주식을 어떻게 합산해야 할까. 

오뚜기 창업주인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2015년 11월 17일 공익법인인 밀알미술관에 오뚜기 주식 3,000주(지분율 0.09%), 남서울은혜교회에 17,000주(0.49%), 밀알복지재단에 10,000주(0.29%) 등 총 3만주를 출연했다. 함 명예회장은 세 단체에 주식을 기증하기 전인 1996년 이미 오뚜기재단에 17만주(4.94%)를 증여한 상태여서 2015년 이들 단체가 받은 오뚜기 주식을 더하면 과세 면제 기준인 5%를 넘어서게 됐다. 이에 세 단체는 출연받은 주식 중 밀알미술관의 2,000주(0.06%)를 제외한 2만 8,000주가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48조 1항 단서에서 정한 '공익법인 등이 내국법인의 주식을 출연받은 경우로서 그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를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증여세를 신고했다.

그러나 삼성세무서가 성실공익법인등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밀알복지재단에 대한 증여세를 취소하고, '같은 날 이뤄진 출연은 동시에 출연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로 위 2천주를 세 단체가 출연받은 각 주식의 비율에 따라 안분하여 과세표준과 세액을 산정,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에 증여세를 추가로 부과하자,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미술관이 "2,000주는 밀알미술관의 증여재산가액 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삼성세무서를 상대로 추가 증여세 부과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월 23일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9두56418). 법무법인 광장이 원고들을 대리했다. 

대법원은 먼저 "구 상증세법 제48조 제1항 제1호 등 관련 법령의 내용과 규정 체계 등에 비추어 보면, 다수의 공익법인등이 같은 날 동일한 주식을 출연받았더라도 그 출연이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해당 출연으로 구 상증세법 제48조 제1항에 따른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이 있는지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출연 시점을 기준으로 관련 법령에서 정한 주식을 합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와 달리 다수의 공익법인등이 같은 날 출연받은 주식을 모두 동시에 출연된 것으로 의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구 상증세법 제48조 제1항 제1호 및 구 상증세법 시행령 제37조 제7항 제2호, 제3호는 공익법인등이 출연받은 주식이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를 초과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출연 당시'를 기준으로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일정한 주식을 합산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같은 날 다수의 공익법인등에 출연된 주식이라 하더라도 그 출연의 시간적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각 출연 시점을 기준으로 합산 대상 주식을 확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출연자는 다수의 공익법인등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 등을 고려하여 각 공익법인등에 대한 주식의 출연 시기와 순서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며 "출연자가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 등을 고려하여 주식을 순차로 출연하였음에도 그 출연이 같은 날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각 주식이 동시에 출연된 것으로 의제하여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원고 미술관은 자신이 출연받은 오뚜기 주식 중 2,000주를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 내에 있는 주식으로 보아 그 초과 부분에 대하여만 증여세를 신고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원고 미술관은 함 명예회장이 원고들과의 합의에 따라 원고 미술관, 원고 교회, 밀알복지재단 순으로 주식을 출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만약 원고 미술관이 주장하는 대로 출연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 한도 내에 있는 주식 2,000주(지분율 0.06%)는 앞서 본 법리에 따라 가장 먼저 주식을 출연받은 원고 미술관의 증여재산가액 산정에 반영되어야 하므로, 이 사건 처분 중 원고 미술관에 대한 부분은 위법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주식 출연의 시간적 선후관계 등에 관하여 심리한 다음 이 사건 처분 중 원고 미술관에 대한 부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며 "그런데도 같은 날 이루어진 다수의 공익법인등에 대한 주식의 출연은 그 시간적 선후관계를 불문하고 모두 동시에 출연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그 시간적 선후관계 등에 관하여 아무런 심리를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처분이 전부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구 상증세법 제48조 제1항 제1호 및 구 상증세법 시행령 제37조 제7항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