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가상화폐 매수했어도 거래소에 책임 못 물어"
[민사]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가상화폐 매수했어도 거래소에 책임 못 물어"
  • 기사출고 2023.01.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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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범죄 피해금 여부까지 확인의무 없어"

보이스피싱범이 보이스피싱을 통해 편취한 돈으로 가상화폐를 매수했더라도 피해자가 가상화폐거래소를 상대로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A는 2021년 7월 25일 자녀를 사칭하는 문자메시지에 속아 보이스피싱범에게 신분증, 계좌번호 등의 정보를 보내주었고, 보이스피싱범은 카드사에서 A 명의로 장기대출 4,000만과 현금서비스 400만원을 받아 A 명의의 우체국 계좌로 이체한 뒤 위 계좌에서 1,300만원, 1,800만원, 1,400만원씩 3차례에 걸쳐 합계 4,500만원을 공범인 B 명의 증권계좌로 이체했다. 가상화폐거래소를 운영하는 가상자산사업자인 C사의 고객이었던 B는 자신 명의 증권계좌로 이체된 4,500만원을 C사가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원화자금 예치 용도로 사용하는 중소기업은행 계좌로 이체하고, 이틀 후인 7월 27일 위 4,500만원을 포함한 예치금 합계 8,100만원으로 C사의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매수했다. B의 계좌에 남은 돈은 35,671원.

C사는 당시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C사 명의로 중소기업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각각 이용자별 코드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해당 계좌를 C사 고객의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원화자금 예치 용도로 관리했다. A는 B와 C사를 상대로 "법률상 원인 없이 피해금액인 4,500만원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4,500만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2021가단5290149)을 냈다. A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피해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소기업은행은 2021. 8. 11. 사기 이용계좌 신고를 이유로 같은 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C사의 이 사건 계좌에 대하여 지급정지 조치를 하였다.

서울중앙지법 경정원 판사는 그러나 12월 13일 "피고 회사(C사)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이 사건 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액을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C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B에 대해선, "B는 원고에게 4,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경 판사는 "피고 회사는 이 사건 계좌의 명의자로서 고객인 B의 위탁에 따라 계좌를 관리하면서 그 예치금을 가상화폐 매수대금으로 결제한 것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이득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즉 피고 회사는 이 사건 계좌에 예치된 돈의 보관이나 입출금에 관하여 B와의 관계에서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수탁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고, 결국 그 예치금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권은 위탁자인 B에게 귀속된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계좌는 거래소를 운영하는 가상자산사업자가 대외적인 소유 명의자로 되어 있어 실제 운용자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등 금융실명제를 잠탈하거나 이른바 '벌집계좌'로서 부정한 돈의 은닉 또는 가상화폐 구매대행의 수요에 착안한 범죄수익의 자금세탁 용도로 사용될 염려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 계좌로 입금되는 돈이 실제로 누구로부터 어떠한 경위를 통하여 입금되었는지 등을 조사하여 범죄로 인한 피해금에 해당하는지 여부까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는 "피고들 사이의 가상화폐 구매계약은 보이스피싱의 범죄 수익을 은닉하기 위한 것으로서 법률행위의 목적 등이 민법 제103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경 판사는 그러나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 행위라 함은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이거나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그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격을 띠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하는데(대법원 1996. 4. 26. 선고 94다34432 판결 등 참조), 범죄 수익을 은닉하기 위한 목적의 가상화폐 구매계약은 그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동기가 표시되거나 피고 회사에게 알려졌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A는 "C사는 이상거래에 대하여 출금보류조치를 해야 하는 등 가상화폐거래소 운영자로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원고에게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인한 손해를 입게 했으므로, B와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도 주장했다.

경 판사는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이 사건의 경우 원고로부터 B 명의 증권계좌로 피해금액이 이체된 후 해당 금액이 이 사건 계좌로 다시 입금된 것이므로,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직접 이용된 것은 아니고, 피고 B는 정상적인 피고 회사 거래소 내 절차를 거쳐 4,500만원을 이 사건 계좌에 입금하고 보안인증 후에 해당 금액으로 가상화폐를 매수한 것으로, 피고 회사가 중소기업은행 등으로부터 계좌의 지급정지 사실을 통지받기 전까지 피고 B가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취득한 금액을 이 사건 계좌에 입금하였다는 사정을 알았다거나 이를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원고에 대한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C사는 이상거래감지 시스템(FDS)를 이용하여 이상거래를 필터링하는 등의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었는데, 피고 B의 위 피해금액 이체에 대해서는 이상거래로 판단되지 아니하였다.

법무법인 우일이 C사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