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선임병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했어도 보험금 지급해야"
[보험] "선임병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했어도 보험금 지급해야"
  • 기사출고 2023.01.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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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자유로운 의사결정 하지 못한 상태"

육군 사병이 선임병들로부터 폭행 등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더라도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2월 15일 선임병들의 폭행 등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A씨의 어머니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며 ABL생명보험과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0다263567)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링컨로펌이 원고를 대리했다.

2016년 12월경 군에 입대한 A는 신병 훈련을 마치고 보병사단의 장갑차 조종수로 배치되었는데, 대대 배치 후 선임병들로부터 여러 차례 모욕, 폭행 등을 당해 우울증 진단을 받는 등 군 생활에 부담을 느끼다가 같은해 8월 15일 낮 소속대 영내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A의 어머니가 ABL생명보험을 상대로 사망보험금 7,500만원,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1억여원의 보험금 지급을 각각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A의 어머니는 이에 앞서 2016년 8월 ABL생명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과 각각 아들 A를 피보험자로,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상속인으로 하는 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각 보험계약 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들고,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 보험금 부지급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A가 사망할 당시 자살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우울상태를 넘어 자유로운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하자 원고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A가 자살 당시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른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에 따르면, A가 소속 부대 선임병들을 비롯한 부대원들로부터 받은 가혹행위는 그 정도가 매우 중했다. 소속 부대 선임병들은 A에게 여러 차례 폭언을 하고 야구방망이를 사용해 폭행했다. A는 이러한 가혹행위를 소속 부대 간부에게 신고했지만 간부가 A의 신고 사실을 공개하면서 A는 부대원들로부터 내부고발자로 인식되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사망 전날 저녁 A는 근무자교육 일정을 알지 못해 근무자교육에 약 10분 늦게 참석했는데 부대원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와 따돌림으로 A는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A는 2017년 6월 9일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불면, 불안 증세를 호소했고 신체증상장애, 적응장애, 인격장애의 진단을 받았다. 당시 진료기록지에는 A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숨을 좀 헐떡이면서 가슴이 빨리 뛴다고 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 '이대로 눈뜨기 싫다는 막연한 자살사고'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후에도 A는 2017년 7월에 1회, 2017년 8월에 2회의 진료를 받으면서 전신의 이상 증상을 호소했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우울증의 원인인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으며, 자살에 이를 때까지 소속 부대 변경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및 사실조회 결과 등을 바탕으로 A가 우울증의 원인을 회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인지 등을 심리하여 A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우울증과 직접 관련이 없는 환청, 환시, 망상 등의 증상이 없다는 사정 등을 근거로 들면서 자살 당시 A에게 흥분상태나 공황상태 등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종전 판결(2015다5378 판결 등)을 인용,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므로,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