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① 국문 의견서의 영문화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① 국문 의견서의 영문화
  • 기사출고 2022.10.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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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리걸라이팅, 한국법 이해, 한국어 실력 갖춰야"

법무법인 김장리의 은정 외국변호사가 비즈니스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LinkedIn)에 포스팅하고 있는 "The Foreign Lawyer in Korea"라는 주제의 영문 글이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의 세계를 다각도로 분석한 미니 블로그 형식의 글인데, 이미 100개를 훨씬 넘었다. 은 변호사가 이번호부터 리걸타임즈에 '외국변호사의 기술'이란 표제 아래 같은 내용의 연재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의 성공적인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편집자

외국변호사가 한국 로펌에서 일할 때 그 주된 업무는 한국변호사들과 협업하면서 그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다. 외국변호사의 업무 범위 안에는 의견서나 계약서, 기타 법률문서의 번역, 영어 등 외국어를 통한 외국 고객과의 소통 지원, 외국법 자료 조사 등 한국변호사의 법률사무를 지원하는 각종 업무가 포함된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그중 외국변호사의 대표적인 중요 업무는 한국 어소 변호사가 외국 고객을 위해 특정 사안에 대해 준비한 한국법에 관한 국문 의견서를 영문화하는 것이다. 한국 파트너 변호사가 그 영문 초안을 검토하여 마무리한 후 고객에게 발송하게 된다.

외국변호사는 국문 의견서를 영문화하여 한국 파트너 변호사에게 제공할 때 적극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가 한국변호사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고 해서 그 업무를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로펌 변호사는 그 업무 특성상 매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외국변호사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국변호사를 지원하는 업무에 임함으로써 한국 로펌의 국제 업무과정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어야 한다.

단순 영문 번역 곤란

외국변호사가 국문 의견서를 영문화할 때 한국 어소 변호사가 작성한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은 채 번역투로 단순 영문 번역만 한다면 그 외국변호사는 원활한 업무과정에 기여하기는커녕 뜻이 잘 안 통하는 영문 의견서 초안을 작성함으로써 한국 파트너 변호사가 이를 수정하고 마무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하여 업무과정에 병목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간단한 사례를 들자면,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은 해외 유수의 기업의 국내 상표 등록출원 업무를 많이 처리하고 있는데, 등록출원 각 단계마다 해당 해외 기업 담당자에게 현황보고와 질의에 대한 답변을 담은 영문 이메일을 수시로 보내야 한다. 바쁜 한국 파트너 변호사가 일일이 이런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기 어려우므로 대개는 주니어 외국변호사가 영문 이메일 작성 업무를 맡는다. 상표팀 직원이 국문으로 작성한 현황보고나 답변을 외국변호사에게 전달하며, 외국변호사는 이를 토대로 한국 파트너 변호사가 훑어본 후 바로 내보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영문 이메일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

한국 상표법, 관련 용어 잘 이해해야

그런데 이 상표업무 관련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국 상표법 및 관련 용어를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하고, 국문 내용을 제대로 영문화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문 지식재산권 용어와 표현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함축적으로 작성된 국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이를 매끄러운 영어로 풀어내야 하므로 한국어 독해와 영어 리걸라이팅(legal writing) 둘 다 잘해야 한다.

이때 외국변호사가 상표팀 직원이 작성한 내용을 그냥 직역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상표팀 직원이 영문 질의의 미묘한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국문 답변을 작성한 것이 걸러지지 않은 채 영문화되면 한국 파트너 변호사에게 동문서답 격의 영문 이메일 초안이 전달될 수 있다.

둘째, 상표팀 직원이 함축적으로 간단하게 기재한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않아 외국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부연설명을 추가하지 않으면 외국 고객이 주어진 사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 파트너가 외국변호사의 영문 이메일 초안을 뜯어고쳐야 해 비교적 간단한 일인데도 빠르게 처리되지 않고, 파트너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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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예문을 들어본다. 외국 고객사가 특정 상표에 대해 과거에 업무를 처리한 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관련 정보와 서류를 제공해달라는 이메일을 아래와 같이 보내왔다:

"We are working on a matter related to the 'A' trademark and are required to submit further evidence. Have there been any matters that you worked on for our company in regard to this? If yes, please forward copies of any information/document that would assist us in the matter at hand."

이에 대해 상표팀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국문으로 해당 상표에 대해 어떤 서류도 없다고만 확인해줌으로써 과거에 해당 업무를 처리했는지에 관하여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A 상표와 관련한 소송 관련 자료나 기타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차 영문 답변: "We do not have any documentation in relation to the 'A' trademark matter mentioned in your email."

위 1차 답변은 어떤 확인작업도 없이 국문 내용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미진한 느낌이 든다. 이 경우 외국변호사는 해당 상표에 관해 과거 업무 처리 실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후 그 확인사항을 영문 답변에 기재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해당 상표에 관하여 보유한 자료가 없더라도 과거에 그 상표에 관한 업무를 처리한 실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영문 답변: "So far, we have not worked on any matters related to the 'A' trademark in Korea. Therefore, we do not have any documentation (like the ones mentioned in your email) that we can provide for this matter."

위 답변은 과거 업무 처리 실적이 있었는지를 명시적으로 확인해준 후 그 바탕 위에 어떤 자료도 없음을 확인한다. 이렇게 중요한 팩트를 확인한 후 정곡을 찌르는 완전한 영문 답변을 작성해야 한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다.

비교적 간단한 상표업무 관련 이메일 작성도 이렇게 만만치 않은 일인데 더 고난이도의 법률적 사안을 다루는 의견서의 영문화 작업은 말할 나위 없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행간의 의미 풀어 의역해야

외국변호사는 한국 어소 변호사가 작성한 국문 의견서가 때로는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외국 고객의 입장에서 볼 때 행간의 의미가 잘 안 나타나는 경우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국문 의견서를 있는 그대로 단순히 직역하기보다는 행간의 의미를 풀어내는 부연설명을 적절히 추가하면서 의역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외국변호사가 독단적으로 행간의 의미를 해석하고 의역하면 안 되고 동료 한국변호사와 깊은 협의를 하면서 국문 의견서의 내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확인한 후 이를 유려한 영어로 논리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변호사는 국문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쉽게 가기 위해 그냥 직역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변호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영어로 직역되고 그 직역된 내용이 걸러지지 않은 채 외국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면 외국 고객 입장에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이다. 외국변호사는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한국변호사가 귀찮을 정도로 찾아가서 그 내용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해서 한국변호사가 의도한 바를 영어로 정확하고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영문 의견서는 경험이 많은 고객이라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외국변호사가 이런 고난이도의 작업을 하려면 영어로 리걸라이팅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어진 사안을 규율하는 한국법도 잘 이해해야 하며 한국어 실력도 갖춰야 한다.

외국변호사로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이 세 가지 능력을 다 갖추지 않으면 외국변호사의 대표적인 업무인 국문 의견서의 영문화 업무를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이 세 가지 능력 없이는 비단 국문 의견서의 영문화 업무뿐만 아니라 한국변호사들과의 전반적인 협업과 분업도 어려워진다.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가 한국변호사들과 협업하여 그들을 지원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업무이다.

◇은정 외국변호사는 누구=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 중 한 명인 은정 외국변호사는 USC 로스쿨(JD)을 나와 1996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되었으며, 1998년부터 김장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민 · 국적 업무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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