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보이스피싱범이 명의 도용해 태블릿 할부구매…피해자, 대금 지급의무 없어"
[민사] "보이스피싱범이 명의 도용해 태블릿 할부구매…피해자, 대금 지급의무 없어"
  • 기사출고 2022.10.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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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할부구매계약 무효"

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로부터 받은 주민등록증 사진 등을 이용해 피해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설하고, 이 휴대전화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태블릿PC 2대를 할부구매했다. 법원은 할부구매계약은 무효라며 피해자는 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A씨는 2019년 8월 20일 보이스피싱범으로부터 태블릿PC를 저렴하게 구매하여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신용카드 정보, 통장사본 등을 제공했다. 보이스피싱범은 이를 이용해 A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신규로 개설하고, 이 휴대전화로 LG유플러스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태블릿PC 2대를 구매해 이용하는 단말기 할부구매계약과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을 신청했다. 그러나 가입신청서에 기재된 가입자 주소와 연락처(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주소는 A씨와 전혀 상관이 없거나 사용한 적이 없는 휴대전화와 이메일 주소였다.

LG유플러스는 온라인으로 위 신청을 받고, 가입신청서에 기재되어 있는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한 신용카드본인확인 절차(신용카드 본인인증)를 거쳐 본인 여부를 확인한 다음,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전자서명 없이 신용카드 본인인증을 전자서명 수단으로 갈음해 단말기 할부구매계약과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 체결을 승인했다. 이어 배송업체를 통해 가입신청서에 기재된 주소지로 태블릿PC 2대를 배송했으나, 이후 단말기 대금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자 LG유플러스가 할부신용보험계약을 든 서울보증보험에 보험금 230여만원을 청구했다. 서울보증보험은 LG유플러스에 보험금 230여만원을 지급한 뒤 A씨에게 구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A씨가 할부구매계약의 체결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LG유플러스와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할부금과 구상금 등 일체의 채무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라며 소송(2021가단16544)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김상근 판사는 8월 9일 "원고 명의로 LG유플러스와 체결된 단말기 할부구매계약 및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에 기초한 원고의 LG유플러스에 대한 할부금 230여만원 등 일체의 채무와 피고들 사이에 체결된 할부신용보험계약에 기초한 원고의 서울보증보험에 대한 구상금 230여만원 등 일체의 채무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 판사는 먼저 "온라인을 이용한 전자문서 작성 방식으로 할부구매계약이 체결된 경우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신청자가 보내온 전자문서가 작성명의자 본인의 의사에 기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본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고,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한하여 그 문서의 효력이 작성 명의자에게 귀속된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원고가 태블릿PC를 저렴하게 구매하여 줄 수 있다는 성명불상자에게 원고의 신분증 사진과 원고 명의의 계좌번호, 신용카드 정보를 제공한 것은 적어도 LG유플러스에게 원고 명의로 태블릿PC 할부구매 및 이용계약을 신청할 권한을 수여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LG유플러스가 성명불상자를 원고 자신으로서 본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이 사건 할부구매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LG유플러스가 할부구매계약을 원고 본인의 의사에 기한 것으로 믿은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할부거래법) 제8조에 의하여 적법하게 할부구매계약의 청약이 철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어느 모로 보나 할부구매계약의 효력이 원고에게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LG유플러스가 할부구매계약을 비대면 거래방식으로 체결하면서 거래 상대방의 본인인증절차로 실시한 것은 원고 명의의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한 신용카드 본인인증 절차가 유일하였다"고 지적하고, "그런데 가입신청서에 기재된 구매자의 주소는 원고와 전혀 관련 없는 허위 주소였으므로, LG유플러스가 신분증 사본 확인 등의 방법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거나 신용카드 인증방식의 본인확인시 명의자의 주소를 제대로 확인하는 등 본인 여부 확인을 위한 주의를 더 기울였으면 할부구매계약 신청이 보이스피싱 등 성명모용에 의한 것임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휴대전화는 금융거래에 이용되는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등에 비하여 제3자에 의하여 악용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고, 타인 명의 휴대전화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 사건 할부구매계약 신청은, 당일 개통된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고가의 태블릿PC를 2대나 구매하겠다는 것이므로 본인 여부 확인에 있어 더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었다"며 "피고는 휴대폰이나 태블릿PC 판매 영업을 하면서 비대면 거래방식이 대면 거래보다 거래상대방 측의 명의도용의 위험이 높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스스로 온라인 비대면 거래방식을 허용하였고, 비대면 거래방식의 본인인증방법인 영상통화 또는 생체정보 · 공인인증서 · 아이핀 확인방법 등과 비교할 때에 신뢰성과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신용카드 본인인증 방식을 통한 확인방법만을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또 "할부구매계약 신청을 함에 있어 성명불상자는 당일 개통시킨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전자문서 형태의 할부구매 신청서를 보내면서 대금결제 수단으로서의 신용카드 정보를 기재하였을 뿐 공인인증서 정보 등 전자서명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추가적인 전자서명생성정보를 첨부하거나 보낸 사실이 없는바, 피고가 결제수단인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하여 신용카드 본인인증절차를 거친 것을 두고 곧바로 전자서명 정보로 대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할부거래법 8조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6조제1항에 따른 (할부)계약서를 받지 아니한 경우 그 주소를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 등 청약을 철회할 수 있는 날부터 7일 이내에 할부계약에 관한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김 판사는 "할부구매계약은 할부거래법 제2조 제1호 가목의 할부거래에 해당하는데, 할부거래법 제6조 제2항에 따른 할부계약서 또는 그 전자문서는 모두 성명불상자가 당일 개통시킨 휴대전화나 허위로 기재한 이메일 주소로 보내졌을 뿐 원고에게 도달된 사실이 없다"며 "그런데 원고는 피고들로부터 할부구매계약에 따른 변제 독촉을 받고 성명불상자에 의하여 할부구매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알자마자 피고들에게 할부구매계약의 효력이 본인에게 미치는 것에 대하여 직접 이의를 제기하고 각종 민원을 제기하였다"고 밝혔다. 

결국 할부구매계약의 효력은 원고에게 미치지 않으므로, 원고는 피고들에 대하여 할부구매계약에 기초한 할부구매대금 채무와 이를 전제로 한 구상금 채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