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이하 어린이 62명, '기후위기 헌법소원' 제기
10세 이하 어린이 62명, '기후위기 헌법소원' 제기
  • 기사출고 2022.06.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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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크면 너무 늦는다. 탄소배출 훨씬 많이 줄여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피해, 부담은 나이가 어린 세대일수록 더 크게 떠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세대일수록 미래에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게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얘기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이 1.5℃로 제한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사람의 탄소 배출허용량이 1950년에 출생한 사람이 배출할 수 있었던 양에 비해 8분의 1로 줄어들고, 현재 지구상승 온도를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남아있는 탄소예산 대비 한국이 연간 약 7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추세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탄소예산은 2024년이면 모두 소진된다는 주장도 있다.

"탄소배출 훨씬 강력하게 감축해야"

기후변화 위기의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한 민변 환경보건위원회와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단'이 6월 13일 5세 이하 아기 39명, 6~10세 어린이 22명에 딱따구리라는 태명의 20주 차 태아까지 포함된 62명을 대리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한 것은 아기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변호사는 "아기 기후소송의 청구인들은 현세대 중에서 가장 어린 세대로, 허용 가능한 탄소배출량이 이미 대부분 소진됐기 때문에 그 이전 세대보다 크게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며 "이번 아기 기후소송은 부모가 아닌 아기들이 직접 헌법소원 청구인이 되어 가장 어린 세대의 관점과 입장에서 국가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항의하고, 위헌임을 확인받겠다는 것"이라고 이번 헌법소원의 의미를 설명했다.

태아 딱따구리와 6세 아동 청구인의 양육자인 이동현씨는 "20주 차인 태아가 배에서 움직일 때마다 대견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1그램도 배출한 적이 없는 아이가 지금의 기후위기와 재난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쓰럽다"면서 "개인으로서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과 책임이 있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너무 소극적이고 무책임하게 느껴져, 아이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이번 아기 기후소송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형성 중인 생명의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돼야 한다"며 과거 헌법소원 사건에서 태아의 헌법소원 청구인 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5세 이하의 아기와 태아 등 어린이 62명이 6월 13일 탄소중립 ·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른바 '아기 기후소송단'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5세 이하의 아기와 태아 등 어린이 62명이 6월 13일 탄소중립 ·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른바 '아기 기후소송단'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번 아기 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참여한 8세와 10살 두 자녀의 양육자인 남궁수진씨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송에 관해 묻는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지구를 계속 아프게 하면 코로나19 같은 병이 또 생길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을 볼 수 없게 될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이번에 '아기 기후소송'이 제기되면서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이 낸 헌법소원 등 기후위기 관련 헌법소원이 모두 4건으로 늘어났다. '아기 기후소송'의 종전 헌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클 수 있는 가장 어린 세대 당사자가 청구인이 됐다는 점으로, 아기 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참여한 10세 한제아 어린이(흑석초 4학년)는 6월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른들은 우리를 위해 지구를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우리 미래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인다. 우리가 크면 너무 늦는다. 어린이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바로 지금, 탄소배출을 훨씬 많이 줄여야 한다"고 발언했다.

당일 어린 '아기'들과의 연대의 의미로 기자회견장에 함께 한 60플러스기후행동의 민윤혜경 운영위원은 "작년 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태어나면서 기후위기가 우리 아이들의 일로 크게 다가왔다. 어른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만, 국가는 더 큰 책임을 지고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아기 기후소송단'에서는 또 "과거 4대강 관련 대법원 판결 중에서 '환경문제는 시차가 존재하고 환경의 자체 정화능력을 넘어서면 가속화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특성을 갖는다. 미래세대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될 환경이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미 판시한 바 있다"며 "이러한 판결 취지가 이번 아기 기후소송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