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정답 없다'는 판결 불구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국가배상책임 없어
[손배] '정답 없다'는 판결 불구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국가배상책임 없어
  • 기사출고 2022.06.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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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객관적 정당성 잃었다고 보기 어려워"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출제 오류 사건과 관련해 당초 오답 처리를 받았던 수험생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4월 28일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응시자 94명이 손해를 배상하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다233061)에서 이같이 판시, 추가합격한 42명에겐 1천만원씩, 나머지 42명에겐 200만원씩 위자료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지평이 피고들을 대리했다.

2013년 11월 7일 실시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시험 종료 직후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정답을 'ㄱ', 'ㄷ'지문이 포함된 ②번으로 발표했는데, 원고들은 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8번 문제는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량 비교우열에 관한 문제로, 세계지리에 응시한 수험생 중 일부가 'ㄷ' 지문이 객관적 사실에 틀린 지문이라는 이유로 평가원에 이 문제의 정답에 이의를 신청했으나, 평가원은 이의심사실무위원회와 이의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이 문제의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결정하고, 이를 전제로 원고들을 포함한 수능시험 응시자들의 성적과 등급을 결정(이 사건 처분)한 뒤 응시자들에게 시험 성적을 통지했다. 이후 응시자 일부는 이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평가원을 상대로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관련소송)을 냈다. 관련소송의 항소심은 이 문제의 지문 중 옳은 것은 'ㄱ'지문밖에 없어서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는데도 평가원이 'ㄱ'지문과 'ㄷ'지문이 옳다고 보아 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정하여 한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 평가원이 관련소송 원고들에게 한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결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선고했고, 평가원이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교육부장관과 평가원은 2014년 10월 관련소송 항소심 판결을 수용하고 피해 응시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평가원은 세계지리 성적을 다시 산정해 발표했고, 교육부장관은 다시 산정된 세계지리 성적이 반영된 수능시험 성적과 등급에 따라 응시생들이 대학에 추가합격할 수 있도록 구제조치를 했다.

이후 원고들은 각각 1,500만∼6,000여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수능 사회탐구영역의 선택 과목 중 하나인 세계지리 과목에는 원고들을 포함해 모두 37,684명이 응시했다.

대법원은 먼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17다219218 등)을 인용, "어떠한 행정처분이 항고소송에서 취소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기판력으로 곧바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는 없고,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공무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그로 말미암아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있으면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고,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는지는 침해행위가 되는 행정처분의 양태와 목적, 피해자의 관여 여부와 정도, 침해된 이익의 종류와 손해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가원이 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정하고 이에 따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들의 성적과 등급을 결정한 행위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만큼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평가원의 이 사건 처분은 문제 출제와 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는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피고들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에는 국가 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평가원은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탁받아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을 위촉하였고, 출제위원들은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시험문항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위 초안에 대하여 사회탐구영역 내 검토, 1차 검토위원과 2차 검토위원의 개별 · 공통검토, 영역 간 교차검토, 최종 상호검토 단계를 거쳐 시험문항이 완성되었다. 또 수능시험 이의제기 기간에 이 문제에 관하여 이의가 제기되자 평가원은 2013. 11. 13. 외부 전문가 6명을 포함한 17명의 위원이 참석한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개최하였는데, 위 실무위원회에서 16명이 이 문제의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의견을, 1명이 'ㄷ'지문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의심사실무위원회는 이 문제의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결정하였다. 평가원은 이후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에 자문 요청을 하였고,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는 '이 문제의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냈으며, 이의심사위원회도 이 사건 문제의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결정하였다.

대법원은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기 전에 관련소송 항소심에서 이 사건 처분을 재량권의 일탈 · 남용으로 취소한다는 판결이 선고되자 교육부와 평가원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상고를 포기하고 곧바로 응시자들의 구제절차를 진행하였다"며 '평가원은 2014. 11. 20. 세계지리 성적을 다시 산정하여 결과를 발표하였고, 교육부는 이를 바탕으로 2014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결과를 다시 산출하여 지원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된 응시자 633명에 대해 추가합격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고 밝혔다. 또 "응시자 중 이미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추가합격이 되면 2015학년도 입학이나 편입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편입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는 이전 학교에서 이수한 학점을 가능한 범위에서 인정하도록 하였다"며 "원고들 일부도 추가합격이 인정된 대학에 입학 또는 편입학했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